오피니언 최은미의 마음 읽기

사랑스럽진 않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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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은미 소설가

최은미 소설가

벌레 포비아가 있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긴장의 계절이다. 기온과 습도가 올라 매일매일 여러 형태의 벌레들을 마주쳐야 할 때면 꽁꽁 언 겨울이 얼마나 평화로운 계절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무에선 유충들이 실을 타고 내려오고 거리에선 성충들이 날개를 비비며 날아다닌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그리마와 지렁이,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동시에 교란시키며 달려드는 모기, 쓰레기통 입구를 떠나지 않는 초파리와 존재감만으로도 숨을 멎게 하는 바퀴벌레.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우글거리고 꿈틀거리는 것들을 소설 속에서 반복해서 다루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꼭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곰팡이나 머릿니, 심장사상충 같은 벌레들이 계속 등장했다. 나는 아마도 공포 때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꿈틀대며 번식하는 것들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소설에 끌어와 쓰는 것 같다고.

낯선 벌레 러브버그의 등장
익충이라곤 하지만 스트레스
앞으로 어떤 존재들과 만날까

하지만 아무리 소설에 써도 벌레 공포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걱정이 많은 일을 앞두고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벌레가 등장하는 꿈을 꾼다. 새로 사 온 브로콜리 송이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어쩔 수 없이 비명부터 터져 나오고, 그 뒤부터 근 일 년은 브로콜리를 먹지 못한다. 벌레들을 피하느라 가지 않는 공원, 사지 않는 채소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나에게 공포와 혐오를 가져오는 그 생명체들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모기와 파리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세계에 있었고, 사십여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한해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겪었다. 모기와 파리가 아무리 질병 매개 곤충으로 분류된다 한들 그것들은 내 여름 일상 안에 들어와 나를 좀 괴롭히다 계절이 바뀌면 잦아들 뿐이다. 매미, 지네, 벌, 쥐, 나방, 빈대, 개미, 굼벵이,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보는 순간 아 그 벌레, 하고 알 수 있는 숱한 벌레들.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접해온 여러 매체를 통해 나는 그것들에 대한 적지 않은 정보를 갖고 있다. 징그럽고 멀리하고 싶을지언정 그것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익숙한, 내 인식 범위 안에 있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근래에 예외가 생겼다. 사는 동안 어디에서도 보거나 듣지 못했던, 완전히 낯선 대상인 채로 내 일상 안으로 빠르게 들어와 버린 벌레가 생긴 것이다. 바로 러브버그다.

2년 전 러브버그가 처음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폭염 재난 상황을 소설로 쓰고 있던 나는 이 벌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북한산 바위를 뒤덮은 벌레떼는 기후 재앙의 징조로 여겨지기에 충분했고 나는 꿈에 나올까 겁나는 채로도 러브버그의 사진을 계속 검색해 들여다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러브버그는 내게 풍문 속의 벌레였다. 올여름, 그 벌레가 내 집안으로 줄지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와 지하철과 내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이 낯선 개체를 내 세계의 어디쯤 위치시켜야 하는지 대혼란에 빠졌다.

‘러브버그, 사랑스럽진 않아도 해충은 아니에요.’

러브버그가 동네를 뒤덮었던 지난달 말,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시 안내문이 올라왔다. 다른 시 안내문엔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진 러브버그 한 쌍이 꼬리에 하트를 매달고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내 머리는 러브버그가 익충이라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머리를 제외한 모든 감각은 연원이 아주 오래된 벌레 공포증과 혐오증에 내내 붙들려 있었다.

2024년 현재, 사람들은 이 낯선 익충한테 익숙한 해충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매년 더 많은 곳에서 러브버그가 나타나고 토착화될 것이 예견된 만큼 십년 후쯤엔 거실에 모기가 들어오는 것과 러브버그가 들어오는 것이 큰 차이 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러브버그가 이상기후와 함께 나타났듯 그리 머지않은 시일, 우리는 우리 몸이 일생동안 저장해온 정보를 교란하는 뜻밖의 미기록종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에 출현하고 있는 이 비인간 타자들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스럽진 않아도. 사랑스럽진 않아서. 사랑스럽진 않지만. 러브버그가 가져온 이 문장들을 어떻게 완성하느냐에 따라 그 시작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최은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