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 “파리행 티켓 얼떨떨…진영·효주와 메달 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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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2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아람코 팀시리즈에 출전한 양희영. 스마일 이모티콘이 그려진 벙거지 모자를 가리키고 있다. 고봉준 기자

지난 2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아람코 팀시리즈에 출전한 양희영. 스마일 이모티콘이 그려진 벙거지 모자를 가리키고 있다. 고봉준 기자

“사실 파리올림픽은 포기한 상태였어요. 우승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죠.”

지난달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극적으로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양희영(35)과 2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숨 가쁜 일정을 마친 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양희영은 “지금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얼떨떨하다”면서 “틈날 때마다 ‘메이저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꿈이 이뤄질지는 몰랐다. 더구나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파리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내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양희영은 75번째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드디어 한을 풀었다. 이 대회 전까지 통산 5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대회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최종 라운드 중반까지 여유 있게 단독선두를 달리다가 후반 들어 보기(16번 홀)와 더블보기(17번 홀)를 범해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양희영은 “내 골프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 초반에는 긴장했다가 중반 들어 안정을 찾는다. 그러다가 후반 들어 다시 긴장하곤 한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최종 4라운드 내내 가슴이 진정되지 않더라. 마음을 다스리느라 혼났다. 다행히 2위 그룹과의 격차를 미리 벌려놓아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양희영의 세계랭킹은 25위에서 단숨에 5위로 뛰어올랐다. 그 덕분에 세계 3위 고진영(29), 13위 김효주(29)와 함께 극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양희영은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직전 두 대회에서 잇따라 컷 탈락했다. 샷 감각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우승하면 턱걸이로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에 파리올림픽은 포기한 상태였다. 우승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결과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양희영은 이제까지 통산 상금 1555만 달러(약 216억원)를 벌어들였다. 한국 선수 중엔 1826만 달러를 받은 박인비(36)에 이어 2위다. 골프로 부와 명예를 모두 이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7월 파리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실력 발휘를 해서 이번엔 반드시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다. 양희영은 2016년 리우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1타 차로 4위를 차지했다.

양희영은 “리우올림픽 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 그토록 뜻깊은 일인지 처음 알았다”면서 “리우올림픽에선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이번에는 든든한 후배들인 (고)진영이, (김)효주와 함께 메달을 노려보겠다”고 했다.

양희영은 올 시즌 내내 스마일 문양이 그려진 벙거지 모자를 쓰고 필드를 누비고 있다. 2022년을 끝으로 후원 계약이 종료되면서 한동안 로고가 없는 민모자를 썼다. 그러다 볼 마크로 쓰던 ‘스마일 이모티콘’을 우연히 떠올리곤 곧바로 스마일을 새긴 모자를 특별 제작해서 쓰고 다닌다.

양희영은 “모자 앞면이 비니까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더 긍정적으로, 더 행복하게 골프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이 생겼다”고 했다.

양희영은 11일 개막하는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이 대회가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뒤 파리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다시 프랑스로 날아갈 계획이다. 파리올림픽 여자 골프는 8월 7일 파리 외곽의 르골프 내셔널에서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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