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받은 날 야근길 참변에 할 말 잃은 동료들…"제일 좋은 날이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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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사고 현장에 2일 추모의 뜻을 담은 국화와 글귀가 놓여 있다. 김성룡 기자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사고 현장에 2일 추모의 뜻을 담은 국화와 글귀가 놓여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일 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사상자 대부분이 인근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이었다.

서울시청 청사운영팀장 김인병(52)씨는 동료들과 저녁 식사 후 야근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김씨의 형 김윤병씨는 2일 "청사 관리가 워낙 바쁜 업무다 보니 보통 저녁 8∼9시쯤 퇴근하며 연락했었다"며 "그저 일밖에 모르던 동생이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중학생 때 뺑소니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장애를 딛고 서울시 9급 세무 공무원으로 합격했다. 김씨는 체납 세금을 징수하며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고 당일은 김씨가 소속된 팀이 '이달의 우수팀'과 '동행매력협업상' 수상자로 선정된 날이었다.

김씨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온 서울시청 세무과 직원 윤모(31)씨도 사망했다. 윤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유족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윤씨를 끔찍이 아꼈던 할머니는 사고 이튿날 오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보를 들었다. 윤씨의 삼촌은 JTBC에 "조카가 늘 할머니 옆에서 다녔다"며 "아침이 돼가지고 할머니한테 알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 이렇게 숨긴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의 동료는 "2020년에 7급 공채로 들어온 직원인데 인품이 정말 좋았다. 고참들도 힘들다고 하는 일을 1년 정도 한 적이 있는데 항상 웃었고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정말 정말 착하고 애교도 많고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진도 얼마 안 남았는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역 인근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 동료였던 사망자 4명은 대부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사이로 알려졌다. 4명 중 1명은 사고 당일 승진을 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빈소를 찾은 은행 동료들은 "제일 좋은 날이었는데…"라며 눈물을 보였다.

숨진 이모(54)씨의 어머니는 "자식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가느냐"며 손자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백발의 어머니는 "거기가 어디라고 가. 너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니. 내가 먼저 가야지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해"라며 통곡해 눈물을 자아냈다.

이번 참사로 숨진 사망자는 모두 30∼50대 남성으로 6명은 현장에서 숨졌고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같은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글이 잇따라 게시됐다.

네티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고 아들이실텐데…한 순간에 몇 가족의 세상이 무너진건가", "단지 인도에 서있었을 뿐인데 너무 허망하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장소도 아는 곳이라 그런건지 더 슬프고 가슴 아프다",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이었겠지, 쉼도 없었을 테고…참 마음이 아프다", "화도 나고 이태원 참사 때 그 기분이다. 너무 속상하다" 등이라고 적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27분쯤 A씨(68)가 운전하던 제네시스 차량이 서울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왼편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경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사고 원인 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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