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체부 장관 “체육회 정관 개정? 승인 절대 불가”

중앙일보

입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관 개정을 통해 임원들의 임기 제한을 없애려는 대한체육회의 시도에 대해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다. 뉴스1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관 개정을 통해 임원들의 임기 제한을 없애려는 대한체육회의 시도에 대해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다. 뉴스1

대한민국 체육 정책을 이끌어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장 유인촌 장관이 산하 단체 임원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정관을 고치려는 대한체육회의 시도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 장관은 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체육 분야 간담회에서 “(체육회의 요청이 오더라도) 정관 개정은 절대 승인하지 않겠다. 승인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는 체육회가 지난 5월 이사회를 개최해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 등 산하 단체 임원의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기로 결의한 것(5월29일자 중앙일보 단독 보도)과 관련해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체육회는 앞서 열린 이사회에서 ^임원의 연임 제한 폐지 ^체육단체 임원의 정치적 중립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4일에 열리는 임시 총회에서 같은 안건을 승인 받으면 문체부에 정관 개정을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다.

당초 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임원은 4년의 임기를 보낸 뒤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3선 이상에 도전하려면 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체육회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3선 도전을 준비 중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물론, 4선 출마를 저울질 중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제한 없이 선거에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체육분야 간담회에 참석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연합뉴스

체육분야 간담회에 참석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연합뉴스

체육회는 정관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종목 단체나 지방 체육회의 경우 임원을 맡을 인물이 부족하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체육단체의 합리적인 조직 구성과 원활한 운영 ^현직 임원에 대한 피선거권 침해 ^체육인들의 선거권 제약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체육계 안팎에서 “사실상 새 인물의 진입 장벽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 장관은 “우리(문체부)가 승인하든 안 하든 (체육회가) 맘대로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면서 “대신 나랏돈을 받지 않으면 된다. 매년 42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정부로부터) 받아쓰는 데도 학교 체육이든 엘리트 체육이든 계속 낭떠러지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자들이) 회장직을 유지하는 게 그리 중요한가”라며 날을 세웠다. 이어 “주무부처인 문체부 입장에서는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해 허가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거듭 드러냈다.

유 장관은 아울러 문체부가 체육회를 거치지 않고 지방체육회와 종목단체에 예산을 직접 배정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편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체육회가 문체부를 상대로는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외치는데, 정작 산하 회원 종목단체와 지방체육회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에는 반대하는 것 같다”고 꼬집은 유 장관은 “문체부가 예산을 직접 교부하는 건 체육계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 나누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오른쪽)과 장미란 제2차관. 뉴스1

대화 나누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오른쪽)과 장미란 제2차관. 뉴스1

동석한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종목단체와 지방체육회가 각각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기획재정부와 관련 방안을 협의 중”이라면서 “정부 예산안이 8월 말에 확정되는 만큼 파리올림픽 이후 구체적인 집행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한국 체육이 잘 나갔다면 시스템을 굳이 바꿀 이유가 있겠느냐”면서 “대한민국 체육이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정부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예산 편성권을 활용해 한국 체육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 관계자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체육회 예산을 시도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교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면서 “문체부가 예산을 직접 집행하는 게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권한은 엄연히 정부 부처에 있다. 정부는 법령을 정확히 해석해 집행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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