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일상의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붓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돼라”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돼라”고 합니다. 어떡하면 사자가 될 수 있을까. ‘붓다뎐’은 그 길을 담고자 합니다.
20년 가까이 종교 분야를 파고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예수를 만나다』『결국, 잘 흘러갈 겁니다』등 10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붓다는 왜 마음의 혁명가일까, 그 이유를 만나보시죠.
(21) 인도인은 붓다를 왜 ‘여래’라고 부르나
」마침내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는 29세 때 카필라 왕궁을 떠나 출가했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6년간 고행도 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갔으나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었다. 나와 진리. 그 사이를 가로막는 담벼락을 허물고, 그는 우주와 하나가 됐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됐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인도에서는 깨달은 이를 ‘붓다’ 혹은 ‘타타가타(Tathagata)’라고 부른다. ‘타타가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진리로 간 분’ 혹은 ‘진리에서 온 분’이란 뜻이다. 한자로 옮기면 ‘여래(如來)’다. ‘여거(如去)’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와 같이 오고, 이와 같이 간 사람이다. 기독교 신약성경인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표현한다. 불교의 ‘타타가타’에도 그런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다.
불교는 말한다. “25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붓다가 됐다. 그런 깨달음은 비단 싯다르타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이미 진리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의 내면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의 에고가 강한 담벼락이 되어, 나와 진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담벼락만 허물면 된다. 그럼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본래 부처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불교는 긍정한다. 모든 이가 부처가 될 수 있고, 모든 이가 여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힘을 내라고 건네는 위로가 아니다. 깨달은 눈으로 봤더니 실제 그렇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붓다임을 깨칠 수 있는 온전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은 50%도, 80%도, 90%도 아니다. 100%다. 그런 완벽한 가능성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이미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