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번엔 "초대형 탄두" 주장…軍 “끼워 맞추기식 기만∙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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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한 데 군 당국은 “선전·선동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탐지자산으로 포착된 정보와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북한의 주장은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2021년 3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를 발사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2021년 3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를 발사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北 “4.5t급 초대형 탄두, 최대·최소 사거리 시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미사일총국이 지난 1일 신형전술탄도미사일 '화성포-11다-4.5'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신형 미사일은 4.5t급 초대형 탄두를 장착하는 전술탄도미사일”이라며 “시험발사는 중량모의탄두를 장착한 미사일로 최대사거리 500㎞와 최소사거리 90㎞에 대하여 비행 안정성과 명중 정확성을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1일) 황해남도 장연 일대에서 오전 5시 5분과 15분쯤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했다. 이 중 두 번째 미사일은 불과 120여㎞밖에 비행하지 못했다. 이에 실패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북한이 이게 원래부터 의도적으로 미사일의 최소사거리를 시험한 것이었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화성포-11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의 제식명이다. 해당 미사일의 개량형인 화성-11다에 4.5t의 탄두를 강조하는 의미로 화성포-11다-4.5라는 새 제식명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거리부터 거짓 가능성…KN-23 발사 실패 덮기 위한 날조 행보

군 당국은 즉시 반박에 나섰다. 합참은 이날 “북한의 주장은 기만”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우선 북한이 90㎞를 날아갔다고 공개한 두 번째 미사일은 군 탐지자산을 통해 평양 인근 야지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공중폭발을 하지 않아 낙탄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떨어진 지점이 민가가 아니라 인명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주장한 첫 번째 미사일의 500㎞ 사거리도 거짓에 가깝다고 봤다. 군이 판단한 발사 방향으로 원점에서 따져보면 해당 비행거리는 내륙에 포함된다. 전날(2일) 합참은 첫 번째 미사일의 경우 북동쪽 방면 600여㎞를 정상비행한 후 동해상인 함경북도 청진시 앞바다에 떨어졌고, 두 번째 미사일은 이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채 120여㎞를 ‘비정상 비행’한 뒤 평양 인근에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군이 판단한 발사 방향으로 보면 이들 비행거리는 모두 내륙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결론적으로 군 당국은 북한이 KN-23 개량형의 발사 실패를 덮기 위해 초대형 탄두 카드를 꺼내들고 ‘끼워 맞추기’식 날조에 나섰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군 관계자는 “신형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데 내륙을 탄착지점으로 설정한 건 전례를 찾기 힘든 비상식적 행태”라고 말했다. 낙하지점인 야지의 상태를 봐도 정상적인 타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사일에는 최소 사거리가 존재하긴 한다”면서도 “굳이 그것을 시험발사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4.5t 꺼내든 北…4t 이상 한국 현무-4 의식했나

북한이 밝힌 탄두 중량을 놓고서는 한국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4t 이상으로 알려진 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4 탄두 중량과 경쟁한다는 맥락에서 4.5t이라는 숫자를 고안해낸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존 KN-23 개량형의 탄두 중량은 2.5t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북한이 사거리를 짧게 발표한 건 “내륙에 목표지점을 설정해 시설물 타격 위력을 시험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이성준 실장은 “선전·선동에 능한 게 북한”이라며 “그들의 주장이 다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속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력 현무 계열 '괴물 미사일' 모습이 2022년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에서 영상으로 처음 공개됐다. 연합뉴스TV 캡처.

위력 현무 계열 '괴물 미사일' 모습이 2022년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에서 영상으로 처음 공개됐다. 연합뉴스TV 캡처.

북한이 기술적 진전의 의미를 담은 새 무기체계를 선전하면서 공개 내용을 최소화한 점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북한은 사진 한 장 없이 여섯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기사로 이번 발사를 공개했다. 또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관련 내용이 실렸을 뿐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에는 언급이 없었다. 발사 실패에 따른 주민 불만을 신경 쓴 흔적으로도 읽힌다.

성과 부담감, 러시아 세일즈 압박감 작용했을 수도

군 안팎에선 북한이 최근 미사일 시험발사 실패에 쏠린 시선을 돌리기 위해 급히 도발에 나섰다가 다시 한 번 ‘사고’를 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미사일 도발을 벌이고 다탄두 시험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군 당국은 고체연료 기반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공중폭발한 것이라고 영상까지 공개하며 반박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성과에 대한 부담감도 잇따른 날조 행보에 한 몫 했을 수 있다.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 공장을 시찰할 당시 공개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무기 사진(왼쪽)과 지난 2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 잔재의 모습(오른쪽). 군사 전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유사한 지점이 보인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X(옛 트위터) 계정 @IntelCatalyst 캡처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 공장을 시찰할 당시 공개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무기 사진(왼쪽)과 지난 2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 잔재의 모습(오른쪽). 군사 전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유사한 지점이 보인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X(옛 트위터) 계정 @IntelCatalyst 캡처

일각에선 대러 무기 수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핑계 거리를 찾았다는 시각도 있다. KN-23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용 미사일의 성능 개량 또는 과시 목적으로 발사에 나섰다가 체면을 구기자 ‘바이어’인 러시아의 불만을 고려해 잔꾀를 부렸다는 것이다. 군 당국자는 “어찌 됐든 북한제 무기체계의 신뢰성에 손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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