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퇴피삼사(退避三舍)와 중이(重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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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山西)성 허우마(侯馬)시에 위치한 진문공(晉文公) 동상. 바이두(百度)

중국 산시(山西)성 허우마(侯馬)시에 위치한 진문공(晉文公) 동상. 바이두(百度)

중국 춘추(春秋)시대 전투는 2마리 말이 끄는 전차(戰車)가 중심이었다. 고대 서양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전차는 기동성을 위해 전체가 막힘없이 개방된 전투용 수레다. 이 수레에는 마부와 한두 명의 중무장한 중대장급 전사가 탑승했다. 이런 형태의 전차 1대를 좌우에서 각각 24명, 후방에서 24명, 이렇게 총 72명의 보병이 긴 창으로 무장하고 호위했다. 국력의 척도로 쓰인 ‘1000승(乘) 제후’, ‘100승 제후’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도주하는 적을 100보(步) 이상 추격하지 않는다’. 당시 전투의 불문율이던 이 이상한 전술도 호위해주는 보병으로부터 전차가 너무 멀어져 위험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사자성어는 ‘퇴피삼사(退避三舍)’다. ‘퇴피’는 ‘후퇴하여 전투를 피하다’라는 뜻이다. ‘삼사’는 ‘보병의 3일 행군(行軍) 거리’다. 이 둘을 결합하면 ‘적군에게 양보하기 위해 3일 분량의 행군 거리를 후퇴한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로 등극한 진(晉)나라 문공(文公) 중이(重耳, 기원전 697-628)는 각국을 떠돌며 유랑하던 시절에 초(楚)나라 성왕(成王)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성왕은 거의 거지와 다름없던 행색의 중이 일행을 국빈의 예로 맞이해 융숭하게 대우했다. “만약 진나라 제후에 등극하게 도와주면, 내게 무슨 선물을 줄 생각이오?”. 첫 만남에서 성왕은 중이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질문 자체가 너무 노골적이고 난처한 것이었지만 중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응수한다. “진나라 제후로 등극하게 저를 도와주시면, 혹시 부득이하게 초나라 군대와 전선에서 대치할 때 ‘3일 행군 거리’를 양보하여 후퇴해드리지요.”

‘땅의 일부를 떼어주겠다’는 정도의 큰 약속을 내심 기대했던 성왕은 침착하고 늠름한 이 중이의 답변에 매우 당황했다. 옆에 배석한 초나라 신하들이 나서서 ‘무례한’ 중이를 당장 죽여야 한다고 성왕에게 조언했다. “하긴 저 입장일 때, 대장부로서 달리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초나라 성왕은 그들을 만류하며 상황을 급히 수습한다. 출중한 제후의 자질을 가졌다고 이미 천하에 소문이 자자한 중이를 손님으로 맞으며 자신이 도발적인 우문(愚問)을 던졌으니, 날아온 ‘돌직구’ 답변을 너털웃음으로 곱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이는 진나라 헌공(獻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사춘기 즈음부터 그에게는 ‘롤모델’이 하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춘추시대 첫 패자로 등극하고 긴 세월 천하를 쥐락펴락한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다. 중이는 10대 사춘기부터 50대 후반까지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이 ‘상남자’ 환공의 활약상을 듣고 또 들었다.

‘나도 언젠가 저 환공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패자 신분이 되어야겠다’. 자객을 피해 각국을 떠돌며 유랑하는 공자의 신분에 불과했지만, 중년기 이후 이 야망은 중이의 마음속에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중이는 길고 긴 19년 유랑 생활 끝에 마침내 귀국하여 진나라 제후로 등극한다. 그의 나이 이미 62세였다.

기원전 632년, 지금의 산둥(山東)성 서남부 일대에서 중이가 중심이 된 진(晉)·진(秦)·제(齊)·송(宋)의 3만 7000 병력과 초나라 장수 자옥(子玉)이 지휘하는 초(楚)·진(陳)·채(蔡)·정(鄭)·허(許)의 11만 병력 사이에 전투가 치러졌다. 중국 첫 ‘남북전쟁’인 성복(城濮)대전이다. 이 무렵 중이는 진나라 제후였고, 주나라 왕실의 인정을 받으며 천하 제후들의 패자로 등극한 상태였다.

중이는 이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다. 게다가 전투를 며칠 앞두고 중이는 성왕과의 과거 약속을 지키기 위해 ‘퇴피삼사’를 실천한다. 이로써 중이는 과거 유랑 공자 신분으로 성왕과 처음 대면하던 순간의 ‘설전(舌戰) 쓴맛’까지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인류 문명은 발전을 거듭하여, 어느덧 ‘AI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빈말과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각국 사회 지도층의 잘못된 문화는 매일 지구촌 시민들의 마음을 멍들게 한다. 중이의 ‘퇴피삼사’까진 아니어도, ‘말의 무게’를 지키려는 진실한 노력이 늘 아쉽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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