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은퇴 시작 1000만 2차 베이비부머의 인적자본 활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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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은퇴자들 이전보다 건강·교육·IT능력 수준 높아

법정 정년 연장보다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 생태계를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본격화할 때 성장한 1964~74년생을 2차 베이비부머라고 부른다. 모두 95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한다. 이들이 올해부터 법정 은퇴연령(60세)에 순차적으로 진입한다. 한국은행은 어제 60대 고용률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경제성장률이 2024~ 2034년 연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고 한은 보고서가 기조적 저성장에 허덕이는 암울한 미래만 그린 건 아니다. 과거 10년간의 60대 고용률 증가 추세가 이어지면 성장률 하락폭이 0.14%포인트 줄고, 일본처럼 재고용 법제화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펼쳐 60대 고용률이 크게 뛰면 0.22%포인트 줄어든다고 전망했다.

다행히 2차 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1955~ 63년생)에 비해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겠다는 의욕이 강하고, 건강하며, 교육 수준과 정보기술(IT)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기술 혁신이나 산업구조 변화 등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좋은 인적자본이다. 이들을 더 일하게 하는 게 국가경제에도,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일본은 2006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초연금 개시 연령인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에 ▶정년 연장 ▶계속고용 ▶정년제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본 기업은 고령자 임금과 근로시간을 60세 이전 수준으로 유지할 의무가 없는 계속고용을 주로 선호한다.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은퇴자 고용을 자연스럽게 늘릴 수 있도록 일본 사례를 잘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법정 정년 연장은 지금과 같이 경직된 노동시장 환경에서는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년에 맞춰 은퇴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직원만 주로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이미 구인난이 심각한 상당수 중소기업에서는 정년 제약이 느슨한 편이다. 인위적인 정년 연장은 청년이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선 청년 고용을 어렵게 할 것이다.

고령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강제보다 사회 전체를 고령자 친화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쓴 것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 노인이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 업무의 자율성과 유연성이 높고 스트레스가 적은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는 여성과 청년에게도 매력적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이기도 하다. 나이를 따지지 않는 조직문화와 개인의 역량을 정확히 평가하는 시스템은 ‘노인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 나이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바라보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고 성과와 직무를 반영하는 합리적인 급여체계를 도입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