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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전당대회 관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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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역대급 총선 참패에도 절간처럼 조용하기만 하던 국민의힘이 당 대표 경선과 함께 활력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오늘날 국민의힘이 이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당 리더십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들이라고 안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그동안 당 운영에서 정상(正常)보다 비상(非常)이 더 정상적이었다. 선출된 대표가 임기 동안 책임 있게 당을 이끌게 하기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려 앉히고, 대신 비상대책위원장을 세워 당 운영을 맡겨왔다. 2016년 이후만 보더라도 2016년 김희옥, 인명진, 2018년 김병준, 2020년 김종인, 2022년 정진석, 2023년 한동훈, 그리고 지금의 황우여 등 7명의 비대위원장을 불러들였다. 주호영 의원이 잠시 그 역할을 맡았던 경우까지 더하면 모두 8명의 비대위원장이 지난 8년 사이에 당을 이끌었다. 정당 운영의 핵심인 당 리더십을 ‘아웃소싱’해 왔던 셈이다. 가히 ‘비상대책’이 정상적 당 운영을 압도했다고 할 만하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그동안 선출된 당 대표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려 앉히고, 비상대책위원장을 세워 당 운영을 맡겨왔다. 뉴스1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그동안 선출된 당 대표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려 앉히고, 비상대책위원장을 세워 당 운영을 맡겨왔다. 뉴스1

양대 정당의 한 축을 이루는 거대정당이라고 해도, 이처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 같은 임시방편의 체제로 유지되다 보니 유권자에게는 물론 지지자들에게도 안정감이나 신뢰감을 주기는 어려웠다. 집권당이 되어서도 이런 일시적 리더십 하에서 국가 정책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당의 역량이나 비전을 분명하게 내세울 수 없었고, 더욱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리더의 발굴이나 육성도 해낼 수 없었다. 지난 대선 때 정치 경험 없는 외부인사를 당 후보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간 비정상적으로 당이 운영된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표 경선을 통해 국민의힘이 그간의 파행 운영에서 벗어나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8년 사이 8명의 비대위원장
새 대표 선출로 당 정상화될지 관심
누가 되든 일방적 당정관계 불가능
윤 대통령에게도 새로운 도전될 듯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권주자인 나경원(왼쪽부터 가나다순)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뉴스1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권주자인 나경원(왼쪽부터 가나다순)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연합뉴스, 뉴스1

이번 경선은 대통령이나 용산 등 외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모처럼 제대로 된 당내 선거가 진행되고 있고, 후보자들 역시 정치 경험이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는 점에서 경선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정당도 작은 정치 세계라서 하나의 생각이나 구심점만 존재할 수는 없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큰 틀에서 이념적 정체성을 공유하더라도 정책의 우선순위나 대응 방법은 같은 당내에서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다원적 경쟁이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낸다. 또한 여러 후보자 간 경쟁 속에서 지지의 폭도 넓어지고 또 미래의 리더들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당의 지배가 아니라 복수의 정당 간 경쟁이 중요하듯, 당내 민주주의에서도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공존하고 또 서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점차 후보자 간 경쟁이 격해져 가지만 사실상 경쟁이 없었던 지난 당 대표 경선과 비교할 때 정당 정치의 활력이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지난 총선 참패는 이준석 대표를 모멸감을 주면서까지 무리하게 내쫓은 데서 시작되었다. 우선 그로 인해 0.73%포인트 차이의 신승을 가능하게 한 선거 승리 연합에 균열이 생겨났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이후 대중적 존재감이 낮은 당 대표 하에서 국민의힘은 자율성,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대통령의 종속변수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심판’이 대세였던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차별화될 수 없었고, 결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 표출에 당이 독박을 썼다. 여당이라고 해도 윤 정부의 국정 운영이 국민 정서에 어긋나거나 정책적 실수가 있을 때 제 목소리를 냈더라면 선거에서 그렇게까지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당정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과 용산 참모들의 적절치 못한 생각과 판단, 그리고 당의 무기력이 오늘날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처한 정치적 어려움을 자초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작년 12월 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탈당과 동시에 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고 '개혁신당' 출범을 목표로 총선 준비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작년 12월 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음식점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탈당과 동시에 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고 '개혁신당' 출범을 목표로 총선 준비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뉴스1

당 경선 결과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윤 대통령에게 대(對)여당 관계는 향후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세간에서 이야기되는 이른바 친윤, 비윤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해내는 것이 국민의힘이 향후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조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정책이 인기가 없거나 정무적·정책적 실수가 생겨나게 되면 여당이라고 해도 그런 대통령과 차별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제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당의 지지는 자동적인 것이 아니다. 거대 야당의 존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실 대통령의 레임덕은 야당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당이 등을 돌릴 때 레임덕이 본격화된다. 따라서 향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안정적인 당정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당정 관계를 끌고 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어쩌면 그 관계에서 대통령은 이미 ‘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경선은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에게도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