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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등 금속 화재 사각지대 방치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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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리튬 1차전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시신의 수습에 하루가 걸렸다. 공장 내부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리튬 1차전지 상자에서 내뿜는 작은 연기로 시작된 화재가 불과 42초 만에 검은 연기로 번지면서 공장을 덮쳤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보통의 화재가 아니었다.

화성 공장 화재로 23명 사망 참사 #D급 화재 소화기 법 규정도 없어 #방재 선진국처럼 속히 의무화를

화재로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봤다면 그 과정을 잘 살펴서 다음에는 절대로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문명사회라 할 수 있다. 화재는 A, B, C, D, K급 화재로 나눈다. 오랜 과거에 일반적인 A급 화재는 대응 방법이 물로 충분했다.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독자 제공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독자 제공

하지만 문명이 진화하면서 인류가 석유·전기 등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자 화재 대응 방법이 다양해졌다. 석유보다 무거운 물로는 기름에 난 B급 화재를 끌 수 없었고, 전기가 흐르는 곳에 난 C급 화재는 누전·감전을 일으키는 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빨간색 소화기는 이 세 가지(A, B, C) 화재를 모두 효과적으로 끌 수 있는 분말 약제 소화기다. 분말의 주성분은 소화성능이 뛰어나서 다기능 소화 약제라고도 부른다. 2017년에는 쓰는 곳이 많아져 위험 총량이 커진 식용유 화재(K급 화재) 진화용 소화기에 형식승인 등을 관련 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응성이 워낙 크고 ‘열 폭주(Thermal Runaway)’를 일으키는 금속 화재(D급 화재)에는 소용이 없다. 이번에 발생한 리튬 1차전지 화재를 포함한 금속화재는 아직 제도권 밖이다. 사업주가 비치하지 않아도 관련 법이 없으니 처벌할 수도 없다.

대구 서구 가드케이 대구공장에서 업체 직원이 리튬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 장치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서구 가드케이 대구공장에서 업체 직원이 리튬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 장치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등 방재 선진국에서 이미 쓰이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도입하면 될 텐데, 왜 아직도 제도 타령만 하는지 답답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가장 흔한 A, B, C급 화재용 소화기는 2만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K급 소화기는 도입되기 직전에는 20만원 정도였다가 대량생산 덕분에 이제는 3분의 1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다. 지금 D급 소화기의 소매가격이 25만원 정도다.

대형 화재 참사를 겪기 전에 식용유 화재를 제도권으로 제때에 잘 흡수했다고 자화자찬한다면 이번에 리튬 1차전지 화재로 큰 인명 피해를 봤으니 D급 화재 대책 도입이 늦어졌다는 자책도 가능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D급 화재 대책을 제도권으로 흡수해 소화 설비를 양산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리튬(원소기소 Li)은 가장 가벼운 금속원소인 데다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물과 습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H2O)과 반응하면 수산기(OH)를 갖고 수소(H)를 내뿜는다. 이 수산화리튬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수소는 폭발적으로 연소한다.

가벼운 질량에 많은 전기에너지를 담기 때문에 가장 높은 전기밀도를 갖는 것은 문명의 이기 측면이다. 반면 폭발적인 반응성 때문에 열 폭주를 일으키는 것은 문명을 위협하는 흉기 측면이다. 사업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특성상 과학적 성질 중 이로움을 적극 활용하는 반면 그에 따르는 위협은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설치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의 모습. 전국에서 다문화 인구가 가장 많은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마련된 이 분향소는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가 이날 오후 설치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설치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의 모습. 전국에서 다문화 인구가 가장 많은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마련된 이 분향소는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가 이날 오후 설치했다. 연합뉴스

이번 화재 사망자 23명 중에서 18명이 외국인 근로자들이었다. 그동안 정부는 심각한 저출산과 국내 근로자의 3D업종 기피로 노동력이 부족해져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의 모국어나 영어로 교육할 수 있는 안전관리자에 대해서는 등급과 배치 기준조차 마련돼있지 않다. 화성 화재 당시 CCTV 화면에 빨간 소화기를 쓰는 근로자의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다. 저임금의 이주 노동자가 많았지만, 그들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상세히 안전교육을 했을지 의문이다. 소방법에 맞는 저가의 빨간 소화기는 많았지만, 고가의 D급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공장 2층의 오르내리기 쉬운 곳에는 리튬 1차전지를 가득 쌓아뒀고, 그 화재로 가로막힌 막다른 공간은 수십명의 작업장이었다. 더는 미루지 말고 소방법·건축법·산업안전보건법을 손질해야 한다. 교훈을 눈앞에 두고도 변명만 늘어놓고 세월만 보낸다면 비극적 재난을 반복하겠다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