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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자수, 실로 압도한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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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지난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폐막한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를 기억하십니까. 국내 1세대 섬유예술가 이신자(93·덕성여대 명예교수)의 평생 작업을 소개한 회고전이었습니다. ‘미술관 전시’라면 으레 회화나 조각 작품을 떠올리는 관람객에게 실로 엮어 만든 그의 다채로운 태피스트리 작업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내 미술계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오는 8월 22일부터 뉴욕 티나킴갤러리에서 이신자 개인전이 열립니다. 미술계 주류 매체에서 소외됐지만, 남들 평판에 휘둘리지 않고 쉼 없이 작업해온 작가가 이룬 귀한 성취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8월 4일까지) 전시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이신자 작가처럼 눈부신 성취에도 불구하고,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가 많았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자수는 정해진 밑그림에 여성들의 반복적인 손동작으로 만들어져 창의성이 불필요한 영역이라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를 보고 나면 그게 얼마나 단순한 구분법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송정인, 벽걸이, 1967, 마대에 염색, 자수, 182x320㎝. 작가 소장. 전위적인 추상 자수를 실험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바탕 천에 천 조각을 붙이고, 다양한 실로 수를 놓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송정인, 벽걸이, 1967, 마대에 염색, 자수, 182x320㎝. 작가 소장. 전위적인 추상 자수를 실험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바탕 천에 천 조각을 붙이고, 다양한 실로 수를 놓았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의 가장 큰 성과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대거 발굴해 보여준 것입니다.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김혜경(1928~2006)의 ‘정야’(1949)는 특유의 빛과 온기, 우아함으로 눈길을 끕니다. 과거 많은 여성은 결혼 후 가사·육아 때문에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요, 그중 한 명이던 이장봉(1917~2016)이 중년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파도’(1995)와 ‘길’(1995)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국가무형문화유산 자수장 한상수(1932~2016)가 전통을 재창안한 ‘궁중자수꽃담문’(1987), 최유현(87) 자수장이 이수자들과 10년에 걸쳐 완성한 ‘팔상도’(1987~1997)는 남다른 규모와 섬세한 묘사로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이밖에 윤봉숙(?~1947), 엄정윤(96), 송정인(87), 손인숙(74) 등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 그곳에 수두룩합니다.

이장봉, 파도, 1995, 유족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장봉, 파도, 1995, 유족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손인숙, 이화, 1995, 작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손인숙, 이화, 1995, 작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1세기에 미술관에서 다시 만난 자수는 그동안 우리 머릿속에서 선명했던 경계의 쉼 없는 진동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들의 창작 본능과 열정은 전통과 현대, 순수미술과 공예, 기능인과 예술인의 틀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꽃의 화가’ 김종학의 원색 가득한 회화가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전통 자수에서 영감을 받았듯이, 자수는 이미 함경아, 강신희, 최수정, 최환성 등 현대 예술가 작업에 녹아들며 진화하고 있습니다. 90대 작가 이신자의 태피스트리가 뉴욕으로 가듯이, 실과 바늘로 시간을 꿰는 자수가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