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은 자유요, 잃은 것은 몸의 형태

김성중 소설가

소설을 쓰다 보면 관심 없던 분야의 책도 건드리게 된다. 자료 삼아 읽던 책이 흥미로우면 참고문헌에 나온 책들도 덩달아 빌려보게 되는데, 이런 ‘문어발식 확장’으로 과학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의 『아더 마인즈』를 만났다.

문어의 진화는 정말이지 신기하다. 몸의 형체는 사라지고 속살만 남아있지 않은가! 오징어조차도 몸속에 딱딱한 부분이 있는데, 문어는 뼈와 껍질이 단 한 곳도 없다고 한다. 덕분에 눈알이 들어갈 작은 구멍만 있어도 몸 전체를 집어넣을 수 있고, 모양과 색을 마음껏 바꿀 수 있다.

김지윤 기자

문어는 중앙집권적인 뇌와 국지적으로 분산된 뉴런을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두뇌’를 발달시켰다. 재즈 연주자처럼 하나의 곡을 연주하면서 순간적인 즉흥연주도 가능한 것이다. 자기 팔을 잘라 먹는 문어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자기 신체를 ‘타자화’할 수도 있으니까.

실험실에서 맛없는 냉동 오징어를 먹이로 받은 문어가 손에 쥐고 있다가 연구원이 다가오자 냅다 던져버린 일화에서는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두족류의 지적 생명체는 사람 얼굴을 식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에게는 물을 뿜는다. 옆 수조의 먹이를 훔쳐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 시치미를 뗄 만큼 머리가 좋다. 유럽연합에서 문어를 ‘명예 척추동물’로 봐야 한다며 잔인한 실험을 금지할 정도라고 한다.

종종 진화에 관한 이야기는 비유나 은유처럼 들린다. 얻은 것은 자유요, 잃은 것은 몸의 형체인 문어 이야기는 자기를 방어해줄 스펙이나 경력을 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소설 속 주인공 같다. 인생에서 엄청난 도전이자 기회인 시기가 다가온다면, 우리는 문어처럼 전면적인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라 안팎으로 음모론이 판치고, 미국 대선 TV 토론에선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압승했다.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문어에게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소설가 김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