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했던 이 남자, 원래 이렇게 웃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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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희준

이희준

“이성민 선배가 꽁지머리·태닝 분장까지 하시기에 저도 질세라 부황 자국을 만들어 달라고 했죠. 경찰 역의 박지환 배우가 첫 촬영 때 우리 외모·연기에 충격받았다더군요.”(이희준)

‘핸섬가이즈’ 한국영화 흥행 1위 #코믹 캐릭터 변신 배우 이희준 #"이성민과 더 웃긴 분장 경쟁 #'범죄도시' 박지환 충격받더라"

천만영화 ‘서울의 봄’ 배우 이성민, 넷플릭스 스릴러 ‘살인자o난감’ 이희준의 웃기기 경쟁이 흥행 역주행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주연한 순제작비 49억원의 오컬트 코미디 영화 ‘핸섬가이즈’(감독 남동협)가 지난달 26일 박스오피스 4위로 개봉한 뒤 닷새 만에 2위로 올라섰다. 닷새 간 누적 관객수는 46만명.

‘핸섬가이즈’는 캐나다 호러 코미디 ‘터커&데일 vs 이블’(2010)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착한 목수 콤비가 험악한 외모 탓에 연쇄 사망 사건에 휘말리는 B급 코미디에 한국형 오컬트를 섞어냈다.

흥행 비결은 단연 배우들이다. 정치 누아르 ‘남산의 부장들’(2020)의 대통령(이성민)·경호실장(이희준) 등 묵직한 역할을 도맡아온 두 배우가 ‘다 내려놓은’ 코믹 캐릭터를 선보였다.

‘섹시남’ 상구 역의 이희준은 “이분 코미디언이냐?”는 관람평까지 나왔다. 외모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은 상구는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춤출 땐 마냥 밝아지는 초긍정 캐릭터다. 개봉 전날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극단 차이무 등) 연극 무대부터 20년간 같이 해온 이성민 배우와 코미디를 함께하는 기회가 신나고 소중했다”면서 “망할 수도 있는 B급 감성 영화에 용기 내준 남 감독님이 고마웠다”고 눈을 반짝였다.

영화에서 목수 상구(이희준, 위쪽부터)와 재필(이성민)은 대학생 미나(공승연) 등과 악령 소동에 휘말린다. [사진 NEW, BH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목수 상구(이희준, 위쪽부터)와 재필(이성민)은 대학생 미나(공승연) 등과 악령 소동에 휘말린다. [사진 NEW, BH엔터테인먼트]

물에 빠진 대학생 미나(공승연)를 구해준 뒤 함께 설거지하는 장면에서 수준급 춤 실력을 보여준다.
“대본엔 ‘상구가 미나한테 춤을 춰준다’밖에 없어서 난감했다. 친한 김설진 안무가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상대한테 잘 보이려고 추는 거니까 좋아하는 동작을 그 여자를 위해서만 하면 된다더라. 좋아하는 몸짓을 자신있게 마음껏 했다.”
숲속 ‘드림 하우스’를 무대로 온갖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실제 산장을 지어 촬영·리허설을 하니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박지환 배우는 좀비가 되는 장면에서 너무 이상한 동작을 준비해서 감독이 자제시키기도 했다. 저와 성민 선배도 거의 모든 장면에서 다른 버전을 시도했다. 다들 의욕에 넘쳤다.(웃음)”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재필(이성민)의 입에서 말벌이 나오는 장면. 현장에서 성민 선배가 (실제론 없는 말벌을) 확 뱉고 날아가는 걸 쳐다볼 때 제일 재밌었다. 상구가 (염소귀신한테 맞고) 날아가는 장면은 원래 넘어지는 거였는데, 현장에 마침 와이어가 있어서 직접 와이어에 매달려 연기했다. CG(컴퓨터그래픽)가 아니다.”
상구는 어떤 인물인가.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대사처럼 평화주의자다.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인물이다.”
극 중 “학생은 아직 안 죽었군요~”라는 상구의 대사는 상대를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한방 먹이는’ 묘한 톤으로 객석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전혀 예상 못 했다. 상구 입장에선 정말 반가운 마음에 진지하게 그렇게 말한 거다. 코미디는 연기자가 진지해야 한다. ‘이러면 웃기겠지’ 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연기의 희열이라면.
“성민 선배처럼 좋은 배우와 앙상블을 이룰 때다. 그저께 바쁘고 피곤해서 짜증이 올라올 때, 문득 21살 때가 떠올랐다. 부모님 반대에도 연극하겠다며 다니던 학교(영남대 화학공학과)를 포기하고 서울에서 고시원에 살면서 대학로를 두 바퀴씩 걸어 다녔다. 2003년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 할까, 갑자기 뭉클해지더라.”
최근엔 연출도 한다고.
“공황장애를 심하게 겪은 적이 있는데, 빠져나오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첫 단편 ‘병훈의 하루’(2018)를 만들었다. 지금 편집 중인 두 번째 단편은 영화 ‘대학살의 신’과 비슷하게 거실에서 가족끼리 45분간 떠드는 이야기다. 사비 4000만원을 털어 만들었다. 진선규 형 등 20년 지기 배우들, 같이 작품한 스태프들이 참여해줬다. 갚아야 할 빚이다. 감독할 생각은 없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꾸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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