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4만명 ‘거대한 은퇴 물결’ 시작 … GDP 삼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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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년~1974년생)가 올해부터 11년간 본격 은퇴 수순을 밟는다. 한국에서 단일 세대로는 최대 규모다. 그간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이들이 직장을 떠나면서 경제성장률도 상당 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1일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부머 은퇴 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 보고서에서 이들이 법정은퇴연령(60세)에 진입하는 2024년~2034년 동안 전년 대비 연간 경제성장률이 평균 0.3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의 은퇴로 2015년~2023년 동안 평균 0.33%포인트 떨어진 것보다 하락 폭이 크다. 이는 은퇴 세대인 60대 고용률이 지난해 수준에서 변하지 않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로 인한 청년층의 노동시장 신규진입, 총요소생산성 변화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2031년~2040년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매년 1.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연간 경제성장률의 약 30% 가까이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셈이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더 큰 타격을 미치는 것은 이들 규모가 커서다. 경제 생산의 주요 요소인 노동 공급이 대규모로 줄면 그만큼 잠재성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총 705만 명 수준이었는데, 2차는 954만 명으로 단일 세대로는 가장 많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인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18.6%에 달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다만, 이는 정년 연장이나 은퇴 세대의 재고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예측치다. 한은은 만약 정책이나 법으로 고령층의 고용률을 지금보다 더 높일 수 있다면,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다른 세대와 달리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하고,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나 정보통신(IT) 기술 습득률이 높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다. 실제 지난해 5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중 계속 일하길 희망한다고 대답한 비중은 2012년 59.2%에서 지난해 68.5%로 상승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우선 한은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최근 10년의 추세만큼 60세 이상 고용률 상승이 이어진다면, 이들 은퇴로 전년 대비 연간 경제성장률은 0.24%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60대 고용률이 늘지 않는다고 가정한 첫 번째 시나리오 감소분(0.38%포인트)보다 0.14%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단순한 정책적 지원을 넘어 고령층의 재고용이나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면, 경제성장률 하락 폭은 더 축소될 수 있다고 한은은 내다봤다. 한은 자체 추산 결과 고령층의 계속 근로를 법제화해 일본처럼 가파른 60대 고용률 증가 추세가 나타난다면, 2차 베이비부머 은퇴로 감소하는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연간 0.16%포인트에 그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고령층의 계속 근로 확대와 고용의 질적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한은은 짚었다. 일본은 2006년에 65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하도록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이재호 한은 조사총괄팀 과장은 “2차 베이비부머의 양호한 경제·사회·문화적 특성에, 효과적 정책이 더해지면 이들의 은퇴가 성장 잠재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상당 폭 축소될 것”이라며 “고령층 고용연장 제도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자산 유동화·연금제도 개선 노력이 이어질 경우 소비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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