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 이후 10분기 연속 적자 … SK온, 비상경영 칼 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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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SK그룹 위기의 핵심으로 꼽히는 SK온이 1일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SK그룹 최고 경영진이 지난달 28~29일 경영전략회의에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투자를 위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가운데 계열사별로 후속 조치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SK온은 이날 오전 8시 전체 임원회의를 열고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SK온은 분기 기준 흑자 전환을 달성할 때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임원들에게 주어진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현재 시행 중인 해외 출장 시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와 오전 7시 출근도 계속할 예정이다.

SK온은 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기로 했다.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직은 폐지하고, 성과와 역할이 미흡한 임원은 연중이라도 보임을 수시로 변경한다. 최근 성민석 SK온 CCO가 영입 10개월 만에 보직 해임되기도 했다. 최영찬 CAO는 SK E&S 미래성장총괄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석희 SK온 대표는 회의를 마친 뒤 전체 구성원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현재의 위기는 오히려 진정한 글로벌 제조 기업으로 내실을 다지는 기회”라며 “우리 모두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정신으로 패기 있게 최선을 다한다면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SK온이 비상경영 선언까지 한 건 그만큼 실적 부진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SK온은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분할을 통해 분사한 이후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 2분기에도 3516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삼성증권)된다. SK온의 적자 누적 영향으로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SK온 출범 전 23조 396억 원에서 2023년 말 50조 759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런 부채는 SK그룹 전체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SK온 위기의 원인을 공격적 투자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이 겹친 탓으로 배터리 업계는 보고 있다.

SK온은 분사 이후 올해까지 시설투자에 투입하는 비용이 총 20조원이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미국과 헝가리 새 공장의 생산량 증대 지연, 수율(양품 비율) 개선 지연 등이 수익성의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 판매량이 줄며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이 줄어든 점도 SK온에겐 악재였다. 증권가는 올 4분기에 SK온이 흑자 달성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이번 다운사이클(하락 추세)에서 버텨낼 수 있다면, 향후 반등이 감지되는 시점에서 (SK온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클 것”(SK증권 리서치센터)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주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 인텔의 팻 겔싱어 CEO를 만나 AI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SK가 1일 밝혔다. 최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들과 만난 사진을 공개하고 “AI 반도체 최전방의 거인들”이라며 “이들이 엄청난 힘과 속도로 세상을 흔들 때 우리도 백보 천보 보폭을 맞춰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앞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만난 사실도 공개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엔비디아를 시작으로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빅 테크 리더들을 잇달아 만나 공동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SK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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