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발칸 신화의 시인"...알바니아 출신 세계적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별세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8세.

지난 2019년 10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 기자간담회'에서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AP통신 등에 따르면 카다레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있는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서 이날 오전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바즈람 베가즈 알바니아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해 “알바니아와 알바니아인들은 천재적인 문인이자 정신적 해방자, 잃어버린 발칸 신화의 시인을 잃었고, 유럽과 세계는 현대 문학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카다레는 오랜 외세의 지배 등으로 유럽에서조차 잊힌 나라였던 알바니아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되살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1936년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나 알바니아가 독재자 고 엔베르 호자의 통치를 받던 1963년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펴내며 주목 받았다. 이후 『돌의 연대기』(1970), 『꿈의 궁전』(1980), 『부서진 사월』(1981) 등의 작품을 통해 독재에 시달리던 알바니아의 현대사를 은유와 풍자로 고발했다.

그는 1990년 12월 학생 시위로 알바니아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 몇 달 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알바니아를 떠나 프랑스로 피신했다. 이후 파리에서 활동하다 2022년 티라나로 귀국했다.

소설과 연극 대본, 시 등 80편이 넘는 카다레의 작품은 전세계 45개 언어로 번역됐다. 200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비롯해 2009년 스페인 아스투리아 왕자상, 2015년 예루살렘상, 2020년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의 문학적 공로를 인정해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두 번이나 수여했다. 지난 2016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5개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코망되르’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티라나를 방문한 자리에서 카다레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 중 두 번째로 높은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