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 모델' 부총리급 인구부 만든다…관건은 예산 권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출생·고령화 대응과 함께 이민·인력 정책 등 인구 문제를 총괄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부총리급 조직인 인구전략기획부는 인구 정책 전략과 기획, 조정뿐 아니라 예산을 사전 심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된다. 경제 발전을 이끄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과거 '경제기획원'처럼 저출생 대책을 주도하면서 출산율 반등 등을 꾀하는 식이다.

정부는 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지 두 달 만에 구체적인 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부처 신설 근거가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인구위기대응기본법'으로 바꾸는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하기로 했다.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취지는 여러 부처에 흩어져있는 인구 관련 정책을 한 부처가 짜임새 있게 집행하도록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중앙행정기관이 아닌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라서 다른 부처 정책에 관여하거나 예산을 조정할 권한이 사실상 없었다.

특히 인구전략기획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발전 종합계획 등을 이끈 경제기획원을 모델로 설계됐다. 이에 맞춰 예산 사전 심의권과 전략·기획 조정 기능 등을 부여받을 예정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인구 관련 정책을 평가해 그 결과를 반영토록 하고,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도 미리 심의하게 된다는 의미다. 중앙부처·지자체장이 저출생 관련 사업을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인구전략기획부와 사전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긴다.

또한 인구전략기획부 장관은 현재 교육부 장관이 겸하는 사회부총리 역할을 넘겨받는다. 실장급 대변인을 두는 한편 저출생 관련 문화·인식 개선 전담 부서도 설치할 계획이다. 통계청 업무도 이관받아 인구 관련 통계 분석·연구 기능을 강화한다.

다만 인구전략기획부가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면 예산 편성 시 얼마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막상 예산을 심의해도 편성권을 지닌 기획재정부가 심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힘이 실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정기 행정안전부 조직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예산) 편성 전의 저출생 사업에 대해선 인구전략기획부가 사전 심의해서 기재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구속력 있는 절차를 마련할 것"이라며 "개정안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인구전략기획부 심의를) 존중한다'고 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구전략기획부가 단순히 여러 부처 사업을 조정하는 대신 '큰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고 봤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컨트롤타워로서) 부처가 힘을 잘 받으려면 정책에 대해 의견만 내는 게 아니라, 미래 인구 변화를 정교하게 예측해야 한다"며 "통계 조사와 분석 기능을 강화해 미래를 내다보고 그에 맞게 국방·교육 정책 등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전략을 짜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수도권 집중과 일자리 이중구조, 사교육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신설 부처가 풀 수 있도록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개정하고 행정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고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재부와 예산 줄다리기에서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치권부터 정부 당국까지 인구 문제에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