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앉힌 SK, 장자 승계 LG…‘핏줄과 돈줄’ 대기업 뒷얘기

  • 카드 발행 일시2024.07.02

The Company

요즘 재계의 눈은 SK에 쏠려 있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동시에, 그룹의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리밸런싱(구조조정)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SK그룹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계열사 간 합병, 투자 지분 매각, 임원 경질 등 소식이 들려온다.

눈에 띄는 것은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위기를 타개할 구원투수로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에게 그룹 의사결정 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기고, 그룹의 핵심 축인 에너지 사업 재편 작업을 친동생인 최재원 SK 수석 부회장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은 최창원 의장의 부친이고, 최태원 회장에겐 큰 아버지다. 사촌과 형제들이 위기 돌파를 위해 뭉치면서 SK그룹 승계의 역사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SK그룹 외에도 창업주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경영하는 국내 대기업들에선 형제나 사촌이 역할과 사업을 나누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종종 형제의 난, 남매의 난도 일어난다.

목차

1. SK의 형제‧사촌경영
2. 쪼개서 나눠 갖가 ‘계열 분리’
3. 한 지붕 아래서 ‘형제 경영’
4. 현실판 ‘눈물의 여왕’…승계에도 여풍
5. 수백년 유효한 지속가능한 승계 비결

1. SK의 형제·사촌 경영   

1950년 전후로 태동한 대다수 한국 대기업들은 창업주 사후 그 후손이 대를 이어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SK는 창업주 형제가 잇따라 경영을 맡으며 회사를 키웠고, 최태원 회장이나 최창원 의장은 창업주 세대의 아들들인 2세에 속한다.

최종현 회장이 1998년 10월 사망한 이후, 후계 자리를 두고 의견을 모았다. 최종건 회장의 아들인 최윤원‧신원‧창원 형제와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재원 형제간 후계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최태원 회장에게 후계자 자리를 맡겼다. 평소 친족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종종 언급했던 최태원 회장은 2018년 1조원 상당의 SK㈜ 주식 4.68%를 23명의 친족에게 증여했다. 23.12%이던 최 회장의 지분율은 증여 이후 18.44%로 줄었다. 현재는 17.73%다.

지난해말 최 회장이 최창원 의장에게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긴 데 대해 재계에서는 사촌들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능력을 믿고 맡긴 것처럼 사촌 동생의 경영능력을 믿고 맡긴 것으로 봤다. 최창원 부회장은 지난 6년간 SK가스‧케미칼‧D&D 등을 계열사로 둔 지주사 체제를 마련해 독자 경영을 해왔다. SK디스커버리 최대주주(40.72%)인 최창원 의장은 SK㈜ 주식은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LG그룹은 ‘장자 승계’라는 엄격한 원칙을 따라 승계한다. 구인회 LG 창업 회장은 1947년 사돈인 허만정 GS 창업 회장과 함께 화장품‧칫솔‧빗 등을 만드는 제조업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했는데 60여 년간 이어진 동거는 2005년 허만정 회장이 LG그룹에 갖고 있던 지분을 떼어내 GS그룹으로 독립하면서 끝을 맺었다.

구인회 회장 후계는 장남인 구자경 회장이 넘겨받았다. 다음 총수 역시 구자경 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회장이었다. 구본무 회장(1남2녀)은 장남인 구원모씨가 19세에 요절하자 큰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LG 회장을 2004년 양자로 들였고 장자 승계가 이어지고 있다.

LG가의 엄격한 승계 원칙에는 유교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 회장 모두 당시 명망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이었는데 종법 질서를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이 어린 조카가 윗사람이 되는 상황이 되면 계열 분리해 나가는 사례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