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벗어나려다 감옥행…1년간 69채 사들인 신용불량자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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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뉴스1

아파트단지. 뉴스1

'무자본 갭투자'로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하는 주택 69채의 소유주가 된 50대 신용불량자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광주지법 형사5단독 지혜선 부장판사는 1일 사기 혐의를 받는 피고인 A씨(54)에게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한 배상 신청인에게 77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범행은 피해자들의 전 재산이자 삶의 터전인 주택의 임대차보증금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가해지는 고통도 매우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잡부 등을 하며 집도 없이 떠돌면 A씨는 2018년 재기를 꿈꾸며 유리·새시 설비 사업을 했다가 망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후 제본 공장에 일용직으로 취직해 월급 200만원을 받으며 회사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진흙탕에서 벗어날 묘안을 고민한 그는 자기 자본 없이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는 갭투자 유혹에 빠져들었다. 2022년부터 전국 부동산을 뒤져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만 승계하면 추가 자본을 들이지 않아도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당시 전국적으로 집값이 치솟자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임대사업자 갱신을 거부해 임대사업등록을 자동 말소시키는 부동산 정책을 시행했다. 임대사업자들은 세금 문제 때문에 소유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고, 결국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세가보다 낮아지는 '역전세' 현상이 발생했다.

A씨는 이런 역전세 상황을 악용했다. 매매가가 보증금보다 낮아 취득할 때 오히려 현금을 차액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골라 불과 1년여 사이 69채를 사들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광고를 보고 매매가보다 높은 보증금이 있는 부동산 즉 '깡통전세'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렇게 사들인 서울 구로, 경기 파주·부천, 전남 나주 등의 부동산에서 보증금과 매매가의 차액을 그는 이익으로 챙겼다.

A씨는 갭투자에 뛰어들기 전 이미 빚더미에 올라 당연히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사들인 부동산은 수개월 내 대부분 압류됐고 수많은 주택 보유로 거액의 종합부동산세까지 물게 됐다.

미납 세금은 경매 등으로 보전됐고, A씨는 깡통전세로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차액을 이익으로 얻었지만 임차인들은 고스란히 사기 피해를 떠안았다. 경매를 통해서도 임차인들은 자신이 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했다.

A씨가 사들인 부동산의 세입자 7명이 피해를 봤고, 8억원의 임대차 보증금이 미반환됐다. 나머지 부동산 60여채도 향후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추가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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