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모자 살렸으니 日공작원" 中인터넷업체, 민족주의 SNS 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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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의 스카이타워가 24일 쑤저우에서 발생한 일본인 모자 피습 사건을 막던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후유핑을 애도하는 조명을 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의 스카이타워가 24일 쑤저우에서 발생한 일본인 모자 피습 사건을 막던 과정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후유핑을 애도하는 조명을 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이 과도한 민족주의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에 대한 단속에 들어갔다. 최근 일본인 모자를 흉기로 공격하는 괴한을 막으려다가 숨진 중국인 스쿨버스 안내원을 “일본 공작원”으로 깎아내리는 등 도를 넘은 게시물이 나오면서다.

지난달 30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중국 버전인 '더우인(抖音)'은 “외국인 배척을 고취하고, 중국인 스쿨버스 안내원을 ‘일본 공작원’이라고 비방하는 등 극단적이고 그릇된 내용이 발견됐다”며 문제 계정을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전날인 지난달 29일엔 SNS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가 공지를 통해 “지난달 24일 쑤저우(蘇州) 흉기 피습 사건에 일부 네티즌이 중국과 일본의 대립을 선동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있다”며 “이들 불법 콘텐트와 계정을 단호하게 단속해서 규정 위반 게시물 836건과 계정 61개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털 '바이두(百度)'도 “인터넷에서의 특이 동향과 난무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밀접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검사 인원을 늘려 유해한 내용과 악랄한 계정을 엄격하게 처리했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누적 338건의 유해 콘텐트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중국 쑤저우 일본인학교 인근에서 발생한 흉기 피습 사건 현장에 희생된 후유핑을 애도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사진 웨이보 캡처

지난달 24일 중국 쑤저우 일본인학교 인근에서 발생한 흉기 피습 사건 현장에 희생된 후유핑을 애도하는 조화가 놓여 있다. 사진 웨이보 캡처

또 다른 인터넷 포털 '넷이즈(網易)'는 이날 단속 관련 공지에서 최근 창궐하는 민족주의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930년대 항일전쟁 시기 친일 분자를 처단했던 중국공산당 내 특무조직인 “항일서간(抗日鋤奸)”, 청나라 말기 중국 북부 지역에서 봉기했던 외세 배척 비밀조직인 ‘현대판 의화단(義和團)’을 조직하라는 선동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일본 전역을 침몰시키고, 하루빨리 종족을 말살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극단적인 반일 포퓰리즘 발언도 적발됐다.

이와 관련, 1일 중국의 한 SNS 기업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영향이 매우 크다”며 “많은 SNS 플랫폼이 새로운 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일 정서는 중·일 양국 외교관계의 흐름에 따라 잠복하거나 증폭되길 반복했다. 최근 몇 달간엔 악의적인 게시물이 주류를 이뤘다. 가령 중국 주요 도시 내 35개 일본인 학교가 중국인 학생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숏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심지어 일본인 학교의 보안요원과 미화원 모두 일본인이 맡고 있으며 보안이 엄격해 “간첩 훈련소를 연상시킨다”는 등의 극단적인 내용도 있었다.

발단이 된 일본인 모자 피습 사건은 지난달 24일 오후 쑤저우 가오신취(高新區)의 한 버스정류소에서 발생했다. 당시 일본인 어머니와 아들은 범인을 막아선 후유핑(胡友平) 스쿨버스 안내원의 희생 덕분에 큰 부상을 피했다. 하지만 크게 다친 그는 회복하지 못하고 26일 끝내 숨졌다. 쑤저우시 정부는 후 교사에게 ‘쑤저우시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행동한 모범’ 칭호를 추서했다. 일본의 주중대사관도 28일 그를 추모하는 조기를 게양하고 SNS에 공개하며 애도했다.

"반간첩법은 국민총동원 체제 만들기"

한편 지난달 10일 중국 지린시에서 발생한 미국 대학 강사 4명(미국인 3명 포함) 흉기 피습에 이어 일본인 모자 피습 사건까지 발생하자 서방에선 "개정 1주년(1일)을 맞은 반(反)간첩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지난 1년간 외국 간첩을 신고해 10만 위안(약 1900만원)의 상금을 받은 특별 공헌자 2명 등 총 171명이 277만 위안(약 5억25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며 실적을 자랑했다. 이에 대해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개정된 반간첩법은 모든 중국 국민에게 스파이 행위를 발견했을 경우 고발 의무를 부과했다”며 “간첩 적발에 국민총동원 체제 만들기가 진행 중”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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