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근접자도 "해외 인재 못 데려와"…정부 "이공계 비자 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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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외국인 교수나 학생들을 한국에 채용·유치하기가 비자 등 제도적 미비로 쉽지 않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국내 과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가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공계 활성화 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난해 법무부 국정감사 때도 조정훈 국민의힘(당시 시대전환) 의원실에 같은 고충을 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 첫 영국왕립학회 회원이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리보핵산(RNA) 전사체를 세계에서 처음 분석한 연구자로 평가된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서울대 석좌교수)이 지난 4월 18일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서울대 석좌교수)이 지난 4월 18일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1일 이날 연구유학생(D-2-5)과 연구원(E-3) 비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과학·기술 분야에 숨통을 틔워보겠다는 취지다.

우수 외국인력 부족 현상은 이공계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2022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등의 ‘외국인 이공계 석·박사 인재’ 수요조사에 따르면 부설연구소를 보유한 기업 300곳 가운데 전체의 69%가 ‘외국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내국 인력 부족(43%)’, ‘해외시장 진출 업무에 활용(43%)’, ‘국내 인력 대비 전문성 및 능력 우수(33%)’ 등의 이유였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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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학생·연구원 비자 어떻게 바뀌나

연구유학생(D-2-5) 비자는 그간 ▶석·박사 학위 소지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광주과학기술원(GI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등 이공계 특성화기관 5곳이 초청한 해외 학사 재학생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이에 법무부는 영국 타임즈 고등교육 세계 평판도 랭킹(THE Ranking) 200대 대학 또는 영국 큐에스(QS) 세계대학순위 500위 이내 국내 대학의 경우엔 이공계 해외 학사 과정 재학생을 초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포항공대·성균관대·한양대 등이 연구유학생 초청 가능 대학에 새로 편입되는 셈이다.

법무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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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원(E-3) 비자도 문턱을 낮췄다. 국외 석사 학위 소지자에게 요구하던 ‘3년 이상의 경력’ 대신 ‘경력이 없더라도 우수대학 졸업·우수논문 저자인 경우’로 연구원 초청 자격을 완화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시범 운영 격의 문호 개방”이라며 “추이를 지켜보며 단계적으로 넓혀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학생 55.5% “韓 취업 원해”…현실은 8%

다만 비자 확대가 우수 인력의 국내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영주·귀화의 허들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윤명숙 전북대 교수팀이 교육부에 제출한 ‘지자체-대학-기업연계 학생교류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서 유치한 외국인 유학생 중 국내 취업이 된 경우는 전체의 8%에 불과했다. 대학원 유학생(2199명) 중 55.5%는 “한국에서 진학·취업을 원한다”고 답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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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적에 따라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KAIST 등 이공계 특성화기관 5곳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실적 등에 따라 거주자격→영주권→대한민국 국적을 단계적으로 부여하는 제도다. 귀화까지 6년 이상 소요되던 기존 4~5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3년 이내 3단계로 줄였다는 의미가 있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여전하다. 법무부는 “우수 외국 인재들이 영주·귀화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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