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세상은 온통 파란색…'안데르센상' 이수지 그림책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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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세 아이가 누가 물풍선을 더 멀리 던지나 내기를 하고 있다. 몸이 작은 아이는 거침없이 발을 내디디며 팔에 온 힘을 싣는다. 바닥에는 아이들이 던진 오색찬란한 물풍선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공중에 흩뿌려진 물과 날아다니는 물풍선으로 세상은 온통 파란색이다.

이수지 특별전 여름의무대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홍지유 기자

이수지 특별전 여름의무대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홍지유 기자

'여름이 온다'는 작가가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홍지유 기자

'여름이 온다'는 작가가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홍지유 기자

 '여름이 온다'는 작가가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홍지유 기자

'여름이 온다'는 작가가 비발디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홍지유 기자

전남 순천 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은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에서는 그림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화 작품들은 물론, 25m 길이의 대형 아트프린트, 벽화, 애니메이션, 가제본, 작업 일지 등을 볼 수 있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여름의 무대' 전시 중 '반대말 백자'. 오른쪽 그림의 제목은 '갇힘'으로 용이 백자 속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왼쪽 '해방된'에서는 백자 속 용이 세상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난다. 홍지유 기자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여름의 무대' 전시 중 '반대말 백자'. 오른쪽 그림의 제목은 '갇힘'으로 용이 백자 속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왼쪽 '해방된'에서는 백자 속 용이 세상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난다. 홍지유 기자

전시장에서 관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옛날 옛적에' 코너다. 한국 전통 설화에 이수지의 상상력을 버무린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상반된 의미의 두 단어를 보고 이수지가 느낀 점을 그린 '반대말 백자'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갇힌' 그림에서 백자 속에 머물던 용은 '해방된'에서 백자 밖으로 뛰쳐나와 하늘로 솟아 오른다. 깨진 백자에서 물이 새 나오는 '불가능한'은 두꺼비가 그 틈을 메우며 '가능한'으로 바뀐다. 두 단어에서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뽑아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아이들은 빗방울처럼'은 이수지의 작품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2021년 출간된 그림책『여름이 온다』의 원화 전시다. 작가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1~3악장을 듣고 영감을 받아 각 악장의 연주 속도와 시간을 반영해 그려낸 작품이다.

『여름이 온다』에서 온몸으로 여름을 맞이한 아이들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물줄기는 하늘로 올라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된다. 이수지는 아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색종이 콜라주 위에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다. 색종이를 오려 앉힌 모양 위에 또 한 번 선을 그어 아이의 움직임을 표현했고, 그 위에 시원스레 뻗어 나가는 물을 그렸다. 파란 물줄기는 공중에서 터지고 산발하며 온갖 질감으로 뻗어 나간다. 그림의 리듬은 힘차다. 한껏 흥에 겨운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2021년 출간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비룡소)에 수록된 그림. 자료 비룡소

2021년 출간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비룡소)에 수록된 그림. 자료 비룡소

2020년 출간된『물이 되는 꿈』은 책의 물성을 활용한 아코디언 책이다. 병풍처럼 펼쳤다 접을 수 있게 제작됐다. 전시에서는 『물이 되는 꿈』을 25m 길이의 대형 아트프린트로 재현했다. 한 소년이 파란색 수채 물감 속을 유영한다. 흐르는 물결을 따라 아이는 점점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 강으로, 바다로, 물로… 어느새 아이는 물이 된다.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돌로, 흙으로 스며들고 새가 되어 하늘을 난다. 이수지의 작품 속에서 그림과 문학은 한 몸이다.

'네 개의 책상'은 이수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이다. 작품 구상 단계에서 그린 미완성 스케치도 전시돼 있는데, 연필로 갈긴 듯한 그림에서도 리듬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수지의 드로잉. 어린이의 움직임에서 강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홍지유 기자

이수지의 드로잉. 어린이의 움직임에서 강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홍지유 기자

'무대위에서'는 '그림자놀이', '여름이온다', '토끼들의 밤' 등 이수지 작가의 기존 작품을 무대 위로 옮긴 전시 공간이다. 홍지유 기자

'무대위에서'는 '그림자놀이', '여름이온다', '토끼들의 밤' 등 이수지 작가의 기존 작품을 무대 위로 옮긴 전시 공간이다. 홍지유 기자

전시관 2층에는 '그림자 극장'이 마련돼 있다. 홍지유 기자

전시관 2층에는 '그림자 극장'이 마련돼 있다. 홍지유 기자

어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전시지만, 어린이 관객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수지의 그림책 『그늘을 산 총각』을 바탕으로 만든 인형극 '그늘의 주인'이 평일 1회, 주말·공휴일 2회 그림책 극장에서 열린다. 전시장 2층에 마련된 '그림자 극장'은 어린이들이 작가의 책에 등장하는 동물 모습을 벽면에 그림자로 띄우며 노는 공간이다. 전시장 1층에선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단행본으로 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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