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78화. 『임진록』과 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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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장군은 어떻게 신으로 추앙받게 됐나

1592년 6월, 부산 앞바다에 수많은 일본 함선이 나타났어요. 임진왜란이 시작된 겁니다. 부산진성이 함락되고 동래성도 무너지고, 왜군은 계속 전진해 불과 20일 만에 수도 한양에 이르죠. “조선 왕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왕이 피난한 것을 모른 채 일본군은 도성을 둘러싸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남대문에서 오색구름이 일어나며 한 명의 대장이 나타나더니, 적장 가토 기요마사를 향해 외칩니다. “우리 조선국 사직이 사백 년이 넉넉하거늘 너는 방자히 천운을 모르고 불쌍한 백성만 죽여 시절을 요란케 하느냐? 빨리 물러가라!” 신과 같은 위용으로 붉은 말을 타고 긴 수염을 드리우며 청룡도를 비껴들고 봉의 눈으로 일본군을 노려보는 그는 바로 『삼국지』로 유명한 관우, 관운장이었습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관우의 사당 ‘남묘’. 조선 시대에 중국의 장군인 관우를 제사 지내기 위해 남대문 밖에 세운 사당이다. 관우라는 인간을 존경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관우의 사당 ‘남묘’. 조선 시대에 중국의 장군인 관우를 제사 지내기 위해 남대문 밖에 세운 사당이다. 관우라는 인간을 존경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한양성 밖에서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관우는, 이윽고 명나라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조선을 돕게 하고,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는 스스로 하늘의 병사를 이끌고 적을 가차없이 베어버립니다. 이렇게 관우의 도움도 있었기에 임진왜란은 결국 왜군의 퇴각으로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라는 이야기는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소설 『임진록』 내용이죠. 임진왜란이 끝나고 수십 년 지난 17세기 중반 쓰였다고 추정되는 전쟁 소설 『임진록』 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고 해요. 역사를 소재로 했지만, 그 내용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순신이나 곽재우, 김응서(김경서)처럼 많은 이가 온갖 도술과 기이한 술법으로 활약하죠. 분명히 진 전투를 이겼다고 바꾸기도 하고 마지막엔 일본으로 쳐들어가서 사명당이 도술로 일본을 물에 잠기게 하며 조공을 바치게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당시 일본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역사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 작품엔 온갖 희한한 부분이 넘쳐나지만, 관운장의 등장은 특히 놀라운데요. 관우는 중국의 삼국 시대에 유비가 이끈 촉한의 장수로 『삼국연의』에서 특히 눈에 띄는 인물입니다. 중국의 그것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옛날 죽은 사람이 조선 땅에서 군대를 이끌고 활약하다니. 대체 왜 이런 내용이 들어간 걸까요? 여기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관우 숭배 사상’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는 역사 속의 한 인물이 신, 그것도 최고의 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존재가 된 사실 말이죠. 관우는 삼국 시대의 장수 중 하나입니다. 역사서에선 그를 만 명을 상대할 만하다(만인지적)라며 칭송하지만 수많은 영웅호걸이 활약한 삼국 시대엔 그만한 장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촉한만 봐도 그와 함께 만인지적으로 불린 장비, 흠잡을 데 없는 인품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조자룡처럼 뛰어난 인물이 많았죠. 무엇보다 관우는 마지막엔 적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관우를 ‘관성제군’이라 부르며 칭송하죠.

중국 각지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외국에도 차이나타운처럼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관우의 사당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한 명의 장군, 그것도 패배한 장군이 이처럼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은 관우 이외엔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장수였던 관우는 무신으로 칭송받는 동시에 ‘상업’의 신이기도 해요. 일찍이 그의 고향인 산서성 출신 상인들이 관우의 사당(관제묘)에 모여 공정하게 장사할 것을 맹세했다고 하는데, 이후 다른 지방 상인들도 관제묘를 이용하면서 상업을 수호하는 신으로 받들어졌죠. 나아가 ‘재산을 모아주는 신’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모시게 됩니다.

관우가 관성제군이라 불리며 최고의 신으로 칭송받는 것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유명한 ‘오관참장’입니다. 일찍이 유비가 전쟁에 패해 달아날 때, 관우는 유비의 가족을 보호하다 조조에게 사로잡힙니다. 관우는 유비의 가족을 지키는 조건으로 조조를 돕기로 하며 강대했던 원소와의 싸움,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명장 안량·문추를 쓰러뜨리며 활약하죠. 조조는 그를 우대했지만, 관우는 모든 재물과 지위를 내던지고 유비를 찾아 떠나요. 이때 그를 가로막는 관문의 장수들을 모두 쓰러뜨렸다는 ‘오관참장’은 역사에 기록되진 않았지만, 관우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유비를 향해 떠난 것은 사실. 관우의 인생에선 이처럼 올곧은 모습이 눈에 띕니다.

관우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성격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어 주변 사람과 충돌했고, 그 탓에 나랏일을 망치기도 했죠. 하지만 이익보다도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모습은 이후 많은 이의 칭송을 받게 됩니다. 송나라 휘종을 시작으로 청나라 건륭제까지 많은 황제가 그에게 거창한 칭호를 내렸으며, 불교나 도교에서 그를 신으로 인정하죠.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선조는 남대문 밖에 관우의 사당 '남묘'를 세웁니다. 처음엔 명나라의 강요였다지만, 오래되지 않아 조선 백성들도 관우를 존경하며 각지에 관우 사당이 생겨나죠. 『임진록』 속 관우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임진록』에서 관우가 물리친 일본에서도 관제묘가 생겨났다는 점이죠. 전투에서 패한 장군이면서도 신이 된 관우의 이야기에선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집니다.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 삶의 모습이라는 것 말이죠.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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