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臨大節而不可奪(임대절이불가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증자는 공자보다 46세나 어린 제자임에도 현명하고 절개도 강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왕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믿고 위탁할 만하며, 큰 절개를 지켜야 할 때에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어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전은 절개를 “신념,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않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라고 풀이하고 있다.

끝까지 절개를 지켰으면 좋겠지만 혹독한 고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절개를 꺾은 사람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절개를 빼앗긴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자진하여 절개를 꺾고 자원하여 일제의 앞잡이를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이다.

臨: 다다를 임, 節: 절개 절, 奪: 빼앗을 탈. 큰 절개를 지켜야 할 때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어야 군자. 26x68㎝.

臨: 다다를 임, 節: 절개 절, 奪: 빼앗을 탈. 큰 절개를 지켜야 할 때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어야 군자. 26x68㎝.

‘멍텅구리’라는 노래를 지어 중생을 일깨운 경봉 큰스님은 ‘멍텅구리’를 더러 ‘명통구리(明通求利)’로 풀이하곤 했다고 한다. 밝을 명, 통할 통, 구할 구, 이로울 리. ‘이익을 구하는 데에만 밝게 통달한 사람’을 멍텅구리로 본 것이다. 신념과 신의는 없고, 다만 이익을 좇아 자리를 옮기는 일부 ‘구케의원’같은 부류가 곧 ‘멍텅구리’인 셈이다. 절개는 결코 옛 얘기가 아니다. 멍텅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지켜야 할 살아있는 덕목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