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환차익 노린 투자액 11조…“바닥 밑 지하 나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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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퍼 엔저’ 투자 주의보

엔화 가치가 약 3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엔화 값 상승을 노린 투자자들도 비상이 걸렸다. 환차익을 노린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편 엔저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일본 수출품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업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30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1조2924억엔(11조982억2652만원)으로 지난해 말(1조1330억엔)과 비교해 1594억엔(1조3301억7277만원) 늘었다. 일본 증시 투자액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일본 증권 보관금액은 41억2340만6676달러(5조6985억4802만원)로 예탁결제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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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환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 증가 때문이다. 지금 엔화와 엔화 표시 자산을 사두면, 향후 엔화 값이 과거 수준으로 정상화하면서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바닥일 줄 알았던 엔화 가치가 최근 더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0엔당 원화 값은 올해 1월 2일(919.69원) 대비 지난달 28일(855.6원) 6.9% 상승했다. 올해 초 원화를 엔화로 바꿔만 뒀다고 해도 약 7% 가까운 손실을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달러 대비 엔화 값 하락 폭이 다소 과도하지만, 통화 가치는 복잡한 거시경제변수로 결정되기 때문에 ‘저가 매수 전략(Buy the dip)’을 취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화 값이 언제 얼마큼 다시 오를지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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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엔저 심화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포인트 내리면 한국의 수출가격은 0.41%포인트, 수출물량은 0.2%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산했다. 시장에서 일본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봐서다.

산업마다 영향엔 차이가 난다. 한국무역협회가 집계한 한·일 수출경합도를 보면 2022년 전 산업 경합도는 0.458로 나타났는데, 석유제품의 경우 0.827에 달했다. 자동차·부품의 수출경합도가 0.658로 뒤를 이었고, 선박(0.653), 기계류(0.576) 순으로 나타났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품목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수입 시장의 경우 엔저를 등에 업은 철강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내 철강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가격을, 일본은 품질을 내세우는 게 기존 구도였다면 엔저로 인해 일본까지 가격경쟁력이 높아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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