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개혁파 후보가 1위 이변…“경제난에 분노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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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는 5일 이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된 강경보수 후보인 사이드 잘릴리(왼쪽)와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총선과 대선을 통틀어 40%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과 유일한 개혁파 후보인 페제시키안의 예상밖 1위는 그 자체로 체제에 대한 항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화=연합뉴스]

오는 5일 이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된 강경보수 후보인 사이드 잘릴리(왼쪽)와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총선과 대선을 통틀어 40%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과 유일한 개혁파 후보인 페제시키안의 예상밖 1위는 그 자체로 체제에 대한 항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화=연합뉴스]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개혁파 후보가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과반 득표에는 못 미쳐 최종 당선자는 5일 결선투표에서 가려질 예정인 가운데, 서방 언론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정권의 안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강조했던 투표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선 개표 결과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1041만여 표(42.5%)로 1위를 차지했다. 강경 보수파 사이드 잘릴리(59) 후보는 947만여 표(38.6%)로 2위에 올랐고, 또 다른 유력 보수파 후보였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63) 후보는 338만여표(13.8%)에 그쳤다. 투표율은 약 40%(유권자 6100만여 명 중 2453만여 명 투표)로 역대 대선 최저치를 기록했다.

페제시키안은 심장외과의 출신으로 5선 의회 의원이다. 온건·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으로 발탁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제재 완화, 히잡 착용에 대한 단속 합리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위 잘릴리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으로 외교관 출신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혁명수비대로 참전했다가 오른쪽 다리를 잃어 ‘살아있는 순교자’로도 불렸다. 과거 핵협상 대표로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대선 승리 시 “1979년 이슬람 혁명의 강경한 이상을 고수해 사회·정치·경제적 병폐를 해결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대선 사흘 전 연설에서 높은 투표율이 “정권의 안정성, 세계에서의 명예와 존엄성을 가늠하는 척도”라며 투표를 독려하고, “혁명에, 이슬람 체제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페제시키안을 비토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유권자의 60%가 투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낮은 투표율은 이란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무관심을 반영한다”며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자들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과 수십년간의 제재에 따른 경제 피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에 이란인들의 좌절감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개혁파의 선전엔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히잡시위 여파 등 현 집권층에 대한 민심 이반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온건한 후보를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는 국가의 경제적 불안, 사회적 제한, 서방으로부터의 고립에 분노하고 지도자들에 대해 점점 더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혁파 진영 거물들의 지지도 영향을 미쳤다. 페제시키안은 초기에 인지도가 떨어져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구색 맞추기 카드’라는 시각이 강했으나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 등 인지도 높은 개혁파 인사들이 지지에 나섰다.

결국 결선 투표의 승패는 어느 쪽이 지지층을 더 결집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1차 투표 때 분산됐던 보수층 표심이 결집하느냐 진보 성향 젊은 층이 투표장에 더 나오느냐 등이 변수다. 이란 대선에서 결선투표는 2005년이 유일했다.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군 통수·행정·사법의 최고결정권을 쥐고 있으며, 대통령은 경제정책 설정과 도덕 규범 시행 등 대외적인 얼굴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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