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AI 시대에 종말 고해야 할 초격차 사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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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호 31면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젠 AI(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미국 엔비디아의 가치가 전례 없는 속도로 상승했다. 젠 AI가 가져올 인류사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과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AI 슈퍼 컴퓨팅 솔루션에 대한 엔비디아의 준독점적 지위 때문이다.

하버드 총장과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오픈 AI 이사인 래리 서머스는 일주일 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젠 AI로 인해 올해 태어난 그의 손녀가 1900년생 그의 할머니가 겪은 변화보다 더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예측 덕분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5월 말 1조 달러(약 1380조원)를 넘어선 후 이달 6일에는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일 년 만에 3배로 뛴 것이다. 열흘 전 이 회사 가치는 3조3400억 달러까지 올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 주식시장의 1.8배, 올해 국가 예산(4750억 달러)의 7배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 포함된 3조 달러 클럽에 속한 기업들의 가치는 한국 국가 예산의 20배에 달한다. 이 계산을 하는 이유는 젠 AI를 선도하는 미국 민간기업보다 우리 위상이 얼마나 불리한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다.

엔비디아 시총 정부 예산의 7배
성공비결은 시장 개척과 인재 영입
초격차 내세운 방어에서 벗어나
미래 향한 무한한 자유사고 필요

한편 젠 AI 열풍을 촉발한 오픈 AI의 1년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해 3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은 젠 AI 효용성을 입증할 만한 큰 성공 사례는 없다. 기업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응용 솔루션 시장이 현재 개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를 고평가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가 총액이 사흘 동안 4300억 달러나 떨어지기도 했다. 3조 달러대로 다시 회복했지만, 엔비디아의 시장 변동 폭이 한국 제1의 기업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 3900억 달러를 웃돌았다는 것은 우리에겐 충격적이다.

20대에 엘에스아이 로직, AMD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젠슨 황은 1992년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마친 후 1993년 30세 때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이때는 지금 엔비디아가 석권하고 있는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의 슈퍼 컴퓨팅 시장을 스탠퍼드대 교수 짐 클라크가 창업한 실리콘 그래픽스(SGI)가 석권하고 있을 때다. SGI는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민수용 시장과 미국 국방부의 실시간 위성영상 처리용 슈퍼 컴퓨팅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젠슨은 SGI와 충돌하지 않는 저가의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에 진입했다. 그는 끝없는 실험과 도전을 통해 엔비디아를 30년 만에 젠 AI 시대의 독보적인 AI 슈퍼 컴퓨팅 솔루션 기업으로 키웠다. 젠슨은 주말도 없이 연구개발 세부 사안까지 챙기는 열정적인 리더로 알려져 있다. 첨단 기술 경쟁에서 인재의 절실함을 아는 그는 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탐험적 연구와 최고급 인재 유치도 직접 챙긴다.

2017년 여름 한국전력의 디지털전환 위원장으로 20여 명의 한국전력 임직원,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엔비디아를 방문했다. 당시 엔비디아 직원 수는 현재의 3분의 1인 수준인 1만 명도 되지 않았고, 신축 중인 새 캠퍼스도 문을 열기 전이었다. 2달러 중반의 주가가 4달러로 상승하던 시점이었다. 엔비디아가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에 비해 최고 인재를 유치하기에는 힘이 부쳤던 때였다. 반나절에 걸친 엔비디아 토론을 통해 젠슨 황이 GPU뿐만 아니라 엔비디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고성능 데이터 분석과 AI 프로세싱에 대해 최고의 인재를 유치해 실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회사의 미래를 방문 전보다 더 높게 평가하게 된 나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엔비디아 주식을 추천하기도 했다. 리더와 인재의 흐름을 보면 그 회사의 미래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9년부터 엔비디아 최고과학자를 맡은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의 빌 달리는 젠슨 황이 2000년대 초반부터 공을 들여 유치한 인재다. 반도체 설계부터 병렬 컴퓨팅, 생명과학 등 응용분야까지 폭넓은 경험과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AMD CEO 리사 수와 함께 미국 ‘칩스 앤드 사이언스법’의 구체적 실행 로드맵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엔비디아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아직도 AI 반도체 회사다. 물론 반도체 회사 중에는 세계 1위다. 하지만 이 인식은 하드웨어 중심 사고의 일환이다. 젠슨 황은 2001년 망해가던 알타비스타 신사업 개발 부사장을 영입해 반도체 칩과 그 상위의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줄 쿠다(CUDA)의 산업 생태계 구축 임무를 맡겼다. 신약개발 AI 소프트웨어는 이미 시장을 석권했다. 엔비디아는 이를 다른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또한 클라우드 회사들이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하기 전에, 엔비디아는 선제적으로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적극 모색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내부 인재만으로 할 수 없는 이런 사업 확장을 위해 전략 벤처 투자를 확대하고 이를 이끌 인재도 소프트뱅크에서 영입했다.

한국의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초격차 전략은 래리 서머스가 말하는 인류사적 패러다임 변화와 맞지 않는다. 초격차 사고는 기존 사업 영역을 방어하고자 하는 인컴번트(incumbent) 기업들의 과거 성공에 매인 경직된 전략일 뿐이다. 새로운 사업으로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세대에게는 초격차를 초월한 한계 없는 자유 사고가 필요하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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