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주식투자 단기로 접근…부를 쌓는 건 인내심 게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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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호 28면

수퍼리치 자산 관리 ‘TCK인베스트먼트’ 토포 회장

오하드 토포 TCK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돼도, 과거의 저금리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동산과 채권 수익은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오하드 토포 TCK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돼도, 과거의 저금리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동산과 채권 수익은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부자들은 수십억, 수백억에 이르는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까. 현금부터 부동산, 주식, 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가진 만큼 직접 자산을 관리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개인 자산관리사를 두거나, 은행 등이 제공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거나 혹은 전문적인 자산관리회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등 금융회사나 자산관리회사가 적지 않다.

그중 최상위 부자, 이른바 수퍼리치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회사도 있다. 극소수의 수퍼리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TCK인베스트먼트(이하 TCK)가 대표적인 곳이다. 글로벌 투자회사인 TCK는 한국에서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멀티 패밀리 오피스’(다수 가문·집안의 자산을 맡아 관리·투자하는 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각 고객별로 평균 4000만 달러(약 550억원)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고 있다.

성주나 귀족 등 과거 유럽 수퍼리치의 자산관리 방식을 한국에 도입한 이는 TCK의 설립자이자 세계적 투자가인 오하드 토포 회장이다. 이스라엘 태생의 그는 2013년 ‘월가 가치투자의 전설’로 불리는 하워드 막스의 자문과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TCK를 설립하고, 한국과 영국에서 패밀리 오피스를 운용하고 있다. 토포 회장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했다. 이후 런던과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퀘어 캐피탈 등을 거쳐 23년간 투자 매니저로 활동해 왔다. 한국과는 인연이 없는 그가 어떻게 한국에 패밀리 오피스를 도입하게 됐을까. 그리고 한국의 수퍼리치의 자산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을까. 최근 TCK 한국 사무소에서 토포 회장을 만났다.

한국 수퍼리치, 원화자산 비중 너무 높아

어떻게 한국에 TCK를 설립하게 됐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한국을 알게 됐고 한국의 재계, 정계, 금융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사귀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됐다. 이미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아닌가. 경외감이 들 정도다. TCK가 한국의 자본시장 발전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영국에도 사무실이 있는데.
“많은 글로벌 투자회사가 한국에 출장소 정도를 두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한국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 런던과 서울을 오가지만,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이사도 했고, 두 딸도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다.”
현재 고객 수는 어느 정도인가.
“30곳(명)이 안 된다. 고도의 맞춤형 자산관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최대 30곳 안에서 선별·관리한다. 고객 중엔 개인도 있고 기업도 있다.”

사실 토포 회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혁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컴퓨터 ‘절전 모드’ 기능을 개발한 엔지니어이자 특허권자다. 두 동생 등 가족 대부분이 기술·혁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왜 자산관리 분야를 택했나.
“첨단 기술 산업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 자산관리만의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시경제를 공부했고, 자산 배분 투자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매력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우리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길 원한 측면도 있다(웃음). 2013년부터는 한국에 있는 ‘더 많은 가족’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고,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정확히 한국에서의 투자 수익률은.
“TCK는 수십 년간 성공적인 성과를 보인 전 세계 대학 재단들의 운용방식을 지표로 삼고 있는데, 2013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 고객들의 누적 수익률은 136.3%다. 매우 안전하고 검증된 투자로 자산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 자산가의 자산은 어디에 투자되고 있나.
“미국 달러화와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기타 여러 국가의 주식, 채권, 원자재 등 해외 우수한 금융자산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미국의 대형 기술주 기업이다. 이처럼 글로벌 주식과 채권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통해 목표로 하는 성과는 자산을 10년마다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벤처캐피탈 사모펀드나 대체투자를 통해 초과수익도 추구한다. 초과수익 목표는 자산을 10년마다 세 배로 늘리는 것이다.”
한국의 부자와 다른 나라 부자의 차이가 있다면.
“상속세 이슈를 제외한다면 자산 운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국 수퍼리치의 경우 원화 자산 비중이 과도하다는 게 문제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한 ‘작은 경제’의 나라다. 충격이 오면 큰 변동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난 이스라엘 출신이지만, 내 가족 자산의 90% 이상을 해외에 두고 있다. 이스라엘 또한 한국처럼 작은 경제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작은 경제의 국민일수록 자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미국 달러 기반의 주식이나 채권으로 분산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고 수익률도 높일 수 있다. 가령 1990년 이후 한국 주식을 보유했다면 수익률은 4배 수준이지만, 같은 시기 글로벌 주식과 채권을 샀다면 20배가 넘는 수익률도 가능했을 것이다. 부동산에 집중하고 원화 자산에 기반을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개인과 국가의 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반 개인 투자자에게 효과적인 투자법이 있다면.
“초보 투자자의 경우 글로벌 펀드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주식에 고루 투자하거나, 미국 등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는 한두 곳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S&P500지수와 같은 광범위한 지수에 대한 투자를 추천한다.”
한국 증시는 어떻게 보나.
“한국 주식은 저평가됐고, 성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TCK도 한국 주식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 덕에 성장 잠재력이 높아졌다. 이는 올해 초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 유입(코스피·코스닥 135억 달러 순매수)으로 입증됐다. 그러나 효과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나 기업 규제, 세금 등 다양한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상속세 완화가 중요하다. 만일 개혁이 약하거나 효과가 없을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비중을 줄일 수 있고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토포 회장은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된 한국 투자자의 성급함을 경계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해 빠른 성과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다. 그는 “부를 쌓는 것은 인내심의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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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 투자자들은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매우 위험한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개인 투자자가 개별 기업, 단일 자산,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특히 레버리지를 쓰면서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고루하게 들리겠지만, 다양한 주식 포트폴리오를 장기 보유하는 것이 부를 늘리는 가장 안전하고 입증된 방법이다. 워렌 버핏은 ‘주식시장은 참을성이 없는 사람에게서 인내심 있는 사람에게 돈을 이전하는 장치’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지수에 매달 100만원씩 꾸준히 투자하고 연평균 7%의 수익률을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30년이 지나면 누적평가액은 10억원이 넘는데, 이중 투자 원금은 30% 뿐이다. 70%는 수익이다. 이는 워렌 버핏의 말처럼 주식시장이 인내심 있는 투자자에게 어떻게 돈을 이전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반기 주목할 변수가 있다면.
“미국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다. 그런데 금리 인하 시점 자체가 투자자의 주요 관심사여서는 안 된다. 금리 인하가 시작된다고 해도 투자환경이 갑자기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9월 또는 11월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도 당분간 높은 수준의 금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미국 기준금리는 3.5~4%를 예상한다. 저금리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부동산과 채권 수익률은 기대보다 낮을 것이다. 이미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폭락했는데,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이 상황이 즉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주목할 것은 미국 대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과의 관세 문제가 부각될 것이다. 이는 미 달러화의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2018~2019년 미·중 무역전쟁 발발 이후 양국이 휴전할 때까지 달러화 가치는 원화 대비 16% 상승했다. 현재 미국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세 인상 위험에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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