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경영]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통해 미래 경쟁력 확보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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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 기술 혁신에 총력
올 1분기 R&D에 7조8200억 투자
AI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 선점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

애경케미칼은 연구개발(R&D)을 강화해 사업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함으로써 사업 체계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사진은 애경케미칼 대전연구소 연구원들이 R&D 중인 모습. [사진 애경케미칼]

애경케미칼은 연구개발(R&D)을 강화해 사업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함으로써 사업 체계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사진은 애경케미칼 대전연구소 연구원들이 R&D 중인 모습. [사진 애경케미칼]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국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연구개발(R&D)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기술 혁신과 새 먹거리 발굴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첨단기술 발전이 가속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R&D 투자로 시장 주도권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사상 최대 R&D 투자와 시설 투자를 집행하며 미래 성장 준비에 주력했다. 지난해 기준 R&D 투자액은 28조3400억원으로, 영업이익(6조5700억원)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4분기에 분기 최대인 7조55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7조8200억원을 투자해 또다시 분기 최대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의 R&D 조직은 3단계로 운영된다. 향후 1~2년 내 시장에 선보일 상품화 기술은 각 부문 산하 사업부 개발팀에서 다룬다. 3~5년 내 중장기 미래 유망 기술은 삼성리서치 등 각 부문 연구소에서, 미래 성장엔진에 필요한 핵심 요소 기술은 종합연구소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선행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메모리 시장 리더십을 지키고, 급속한 성장이 예상되는 인공지능(AI)·고성능컴퓨팅(HPC)·전장 등의 시장도 개척하겠다는 전략이다.

SK그룹은 R&D 경쟁력을 강화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첫 현장 경영으로 찾은 곳도 SK하이닉스의 이천캠퍼스 R&D 센터였다. 선제 투자는 구체적인 결실로도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온디바이스 AI용 모바일 낸드 솔루션 제품인 ‘ZUFS 4.0’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플래시 메모리 제품인 UFS의 데이터 관리 효율이 향상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ZUFS 4.0은 모바일 기기에서 온디바이스 AI를 구현하는 데 최적화된 메모리”라며 “HBM으로 대표되는 초고성능 D램에 이어 낸드에서도 AI 메모리 시장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다양한 혁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중장기 소프트웨어 전략 ‘SDx’ (Software-defined everything)를 발표했다. 이는 모든 이동 솔루션과 서비스가 자동화·자율화되고 끊김 없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각자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가장 최적화되고 자유로운 이동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아울러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의 문을 열었다. 기술 혁신과 제조 혁신, 비즈니스 혁신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실증하는 테스트베드다.

LG그룹은 AI를 미래 사업으로 점찍고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AI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2020년 설립된 AI 싱크탱크 LG AI연구원은 2021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중언어가 가능하고 언어와 이미지 양방향 생성이 가능한 거대언어모델(LLM) ‘엑사원’을 개발했으며, 계열사와 글로벌 파트너사들이 각 산업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 AI를 만들어가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최근 미국 출장에서 계열사뿐 아니라 외부 스타트업을 찾아 AI 생태계 전반을 살폈다. AI가 향후 모든 산업에 혁신을 촉발하며, 사업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구 회장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행보다.

포스코그룹은 주력 사업인 철강과 2차전지 소재 사업에서 글로벌 경쟁력과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취임 당시 “철강은 초격차 경쟁 우위를 회복할 것이며, 2차전지 소재 사업은 본원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 혁신 기술을 확보해 두 사업을 그룹의 쌍두마차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팩토리에 AI와 로봇 기술을 적용해 인텔리전스 팩토리로 진화시키고, 철강 산업에서 축적한 운영 역량을 2차전지 소재 사업에 빠르게 이식해 밸류체인 전반에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종합 식품 연구소인 롯데중앙연구소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힘쓰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식품과 식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등을 재가공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푸드 업사이클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대한화장품학회 학술대회에서 식품 부산물의 미용 효능 입증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식품 부산물 추출물 5종의 미용적 효능을 검증한 결과 미백·모발 보호·주름 개선 등의 효능이 확인돼 향후 화장품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화그룹은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맞춰 선제 투자로 우주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1년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 쎄트렉아이가 참여한 그룹 내 우주 사업 컨트롤타워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시켰다. 한화는 위성 통신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선박, 자율주행차 등이 안정적으로 통신하는 초연결 사회를 구축하고, 관측 위성이 얻은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한 데이터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우주 사업 전반에 걸친 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GS그룹의 허태수 회장은 올해 경영 방침 발표에서 “생성 AI의 등장과 함께 현장 직원들이 직접 디지털 전환(DX)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그룹사 전반에서 많은 임직원이 생성 AI 도구를 익숙하게 사용함으로써 업무 혁신을 가속하자”고 밝혔다. 이에 GS그룹은 과거 IT 전문가 중심의 DX 활동을 사업 현장 중심으로 전진 배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간 각 계열사의 DX 담당 인력 4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합동 근무를 시행했다. 사장단이 참여하는 ‘AI 디지털 협의체’도 매 분기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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