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 김홍일 탄핵발의…김, 탄핵전 사퇴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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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27일 김홍일(사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22대 국회 첫 장관급 탄핵 추진이자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에 대해 탄핵안을 발의한 지 210일 만에 또 방통위원장 탄핵에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은 ‘나쁜 습관성 탄핵’을 통한 언론 길들이기 의도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야당이 밀어붙이면 탄핵안 단독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어서, 일각에선 본회의 의결이 가시화할 경우 김 위원장의 직무정지를 피하기 위한 자진 사퇴 가능성도 거론된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김 위원장 탄핵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현재 방통위원 2명으로 주요 의결이 이뤄지는 상황이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반대 의견은 전혀 없었다”며 “이번 임시국회 내에 탄핵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새로운미래 등 야5당은 탄핵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그간 민주당은 방통위 ‘2인 체제’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2인(위원장 포함)과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나머지 3인(여당 1명, 야당 2명) 등 5인 상임위원 합의제로 운영되는데, 지난해 8월 김효재(여권 추천 몫)·김현(야권 추천 몫) 위원 사퇴 이후 대통령이 추천한 위원장(이동관→김홍일)과 이상인 위원의 2인 체제가 이어져 왔다.

야당 “방통위 2인체제 위법” 여당 “언론 길들이기용 탄핵” 

야당은 탄핵안에서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 ▶YTN 지분매각 결정의 심사 기준 미충족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특정 언론사 표적 제재 묵인 ▶국회 불출석 및 자료 제출 거부 ▶TBS(교통방송) 존폐위기 방치 등을 탄핵 사유로 꼽았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설립 목적을 위배해 마치 독임제 행정기관처럼 운영하고 있다”며 “방통위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서 피소추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할 책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과방위 입법청문회에 출석해 2인 체제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지만, 위법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의장은 발의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탄핵소추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는데,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 시 의결된다. 민주당은 다음 달 2일 대정부 질문을 위해 열리는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하고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다음 달 4일 전에 표결에 부치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이 김 위원장 탄핵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8월 12일 예정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교체가 있다. 방문진은 MBC 최대주주로 사장 추천 등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 등 이사장을 포함해 총 9인의 이사(3년 임기)로 구성되는데, 현 이사회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친야 성향 인사가 다수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입법청문회에서 “8월 임기 만료가 닥쳐왔기 때문에 (선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전까지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이 경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의결에 차질이 발생한다. 결국 현재 방문진의 야권 우위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김 위원장 탄핵을 강행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김 위원장 탄핵으로) 임기만료가 되는 방문진 이사회 임기를 불법적으로 연장해 자신들의 권력 장악 수단으로 이용했던 방송을 그대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이동관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탄핵안을 발의했으나, 이 전 위원장이 표결 당일 자진해서 사퇴해 탄핵안을 통과시키지는 못했다. 일각에선 방통위원장 직무정지 사태를 피하기 위한 자진 사퇴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언론관을 가진 이재명 전 대표와 민주당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는 것이며, 궁극에는 이 전 대표 방탄을 위해 언론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디어 분야 교수는 “탄핵은 위법성이 현저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로 보면 김홍일 위원장이 헌재에서 탄핵 심판될 가능성은 작다”며 “그럼에도 민주당이 ‘묻지마 탄핵’을 하는 건 일단 방통위 업무를 마비시켜 야권에 우호적인 현 MBC 체제를 지키려는 전형적인 위력행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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