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피해자 대변인제, 의사 유감 표시제 검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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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피해자 대변인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의료사고 피해자 대변인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의료사고가 났을 때 환자나 피해자를 도와주는 '환자 대변인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의사가 유감을 표명하면 향후 사법절차에서 이를 감안해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27일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를 열어 이런 방안을 논의했다. 의료사고가 나면 피해자가 어떻게 할지 잘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분쟁 조정 초기 단계에서 전문가가 붙어서 도움을 주자는 게 대변인제이다. 쟁점을 파악하고 절차를 알려주는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현행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하거나 대한변호사협회 같은 공익기관에 위탁할 수도 있다. 현행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분쟁 사건에 조정 조력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참고해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방노동위원회 조력제의 경우 일정 소득 이하 근로자에게는 무료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위원회는 분쟁을 빨리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유감 표시법' 도입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의료사고 발생 초기 의료인과 환자가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나 피해자는 의사의 사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리하는 의사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어서 싸움이 격화하고 분쟁이 오래 이어진다. 의사가 사과나 유감을 표시하지 않는 이유는 '사과=잘못 인정'으로 오인돼 법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유감 표시법은 의사가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유감을 표시하고 상황을 설명하면 재판부에서 양형할 때 감경 사유로 고려하자는 것이다. 소위 선처의 근거로 삼자는 뜻이다. 미국의 40개 주, 호주·캐나다·영국·홍콩·스코틀랜드 등에서 유감 표시법(Apology law)을 활용하고 있다. 유감 표시법은 특위에 참여하는 환자단체에서 도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심장·뇌 등의 중증 질환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유감 표시법은 큰 의료사고가 잇따르면서 2018년 도입을 논의했으나 진도를 내지 못했다. 그 무렵 사망 환자의 유족은 병원이 사과하지 않는 점에 분노했다. 어떤 경우에는 사고 1년 후 병원이 사과했다. 하지만 시기가 늦어짐으로써 효과가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국회에 입법 청원이 들어갔고, 의료분쟁조정법 등에 반영하려 했으나 국내 법률 체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돼 없던 일이 됐다.

전문위원회는 27일 회의에서 불가항력적인 분만 의료사고의 보상 확대를 논의했다. 지금은 이런 분만사고가 나면 국가에서 최고 3000만원을 배상한다. 이 액수가 너무 낮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전문위원회는 실제 민사소송의 배상액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실제 배상액은 1억원을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금액을 올리기로 하고 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한 해 모두 30억원의 배상금이 나간다.

이날 회의에서 의료인 형사 처벌 특례 적용 대상과 범위 등이 논의됐다. 정부의 용역을 맡은 연구책임자 원광대 황만성 교수가 방안을 발표했다. 전문위원회는 산하에 별도 '의료사고 법제 소위원회'를 구성해 제정·개정 법률의 타당성 등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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