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프랑스 총선…'과반 차지' 예상 나온 극우 정당 "이슬람 문화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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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오른쪽)가 마린 르펜 전 대표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오른쪽)가 마린 르펜 전 대표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에 참패한 뒤 던졌던 승부수인 조기 총선의 1차 투표가 30일 치러진다. 총선 레이스 내내 RN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면서 ‘동거 정부’ 구성이 유력해지자 RN이 어떻게 세력을 키웠는지, 향후 어떤 정책을 펼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에 따르면 RN이 이끄는 우파 연대 지지율이 36%,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8.5%, 마크롱이 속한 중도우파 집권당 르네상스당 연합(앙상블)이 21%를 기록했다.

RN이 하원 과반(577석 중 289석)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마크롱은 “극우와 극좌가 조기총선에서 이기면 근본적 정책 성향 때문에 내전이 터진다”고 경고하거나, 1차 투표에 이어 다음 달 7일 치러질 결선투표에서 RN을 상대하기 위해 좌파를 공격하는 전략도 취했으나 현재까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총선에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2.5%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자끼리 결선 투표를 치른다.

25일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TV 채널 TF1에서 방송된 정치 토론에 앞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극우 국민연합(RN) 당 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 프랑스 총리 가브리엘 아탈, 좌파 정당 라프랑스인수미즈(LFI)의 마누엘 봉파르 의원. AFP=연합뉴스

25일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TV 채널 TF1에서 방송된 정치 토론에 앞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극우 국민연합(RN) 당 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 프랑스 총리 가브리엘 아탈, 좌파 정당 라프랑스인수미즈(LFI)의 마누엘 봉파르 의원. AFP=연합뉴스

한때 ‘왕따’ 정당, 과반 달성 눈 앞

이런 가운데 RN이 지지층을 넓힌 비결이 주목 받고 있다. 25일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정치에서 수십 년간 ‘왕따(pariah)’였던 RN의 이미지 쇄신 과정을 조명했다.

1972년 ‘국민전선’(NF)으로 시작한 RN의 초대 당수 장 마리 르펜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러나 2011년 당을 이끌게 된 딸 마린 르펜은 반이민주의는 고수하되 반유대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재정문제를 제기해 외연을 넓혔다. 2018년엔 당명을 바꿨고, 공공서비스 확대처럼 좌파적 조치도 제안했다.

불법 이민과 범죄 급증에 따라 프랑스 사회에도 RN에 공감하는 이들도 늘었다. 지난해 10월 한 여론조사에서 44%가 RN이 국정 운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RN의 이미지 변신엔 마린 르펜이 2022년 당 대표로 임명한 조르당 바르델라(29)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바르델라는 훤칠한 외모와 온화한 태도로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의 압승을 이끌었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인 그는 어린 시절 목격한 폭력과 마약 거래가 지금의 강경한 반이민, 반이슬람 정책으로 이끌었다는 서사도 만들었다.

지난 2일 파리에서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 회의가 끝난 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일 파리에서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 회의가 끝난 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EPA=연합뉴스

이슬람·이주민 밀어내고 EU ‘거리두기’ 예고

RN의 정책은 그러나 벌써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바르델라는 27일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슬람 사원 폐쇄와 극단적인 이슬람 종교지도자 추방을 쉽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부르카, 니캅, 부르키니처럼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과시적으로 확언하는” 의복 금지도 포함된다. 바르델라는 “이 전투는 입법적이고 문화적인 싸움”이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외국인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의 출생시민권을 폐지하는 법안도 통과시킬 계획이다. 바르델라는 “지역적 갈등과 기후변화로 엄청난 규모의 이민자가 프랑스에 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토 출생자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주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며 “이민 통제권을 강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22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열린 극우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가 플래카드와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2일 프랑스 서부 낭트에서 열린 극우 반대 집회에서 시위대가 플래카드와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 예산에 대한 프랑스의 연간 분담 규모를 20억 유로(약 2조9700억원) 줄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U 공동 예산이 7년마다 27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데다 다음 회의가 2027년 예정돼 있어 실행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바르델라는 휘발유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 프랑스 기업에 대한 공공 구매 우대 등 EU와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EU와 전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프랑스의 이익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바르델라는 “프랑스인들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고, 통치 방식이 잔인했던 7년 간의 마크롱주의와 단절하길 원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내각 회의를 주재하는 만큼 마크롱에게 첫 회의에서 무엇을 말할 것이냐는 질문엔 “이제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26일 파리 엘리제궁에 모습을 드러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26일 파리 엘리제궁에 모습을 드러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한편 RN 압승이 예상되자 외교관, 교육공무원 등 일부 공직사회에서 RN 소속 총리가 내놓을 정책에 불복종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공무원들은 나치로부터 해방된 뒤 1944년 제정된 법에 따라 ‘명백하게 불법적이고 공익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되는 명령을 거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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