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2 엄마는 ‘기러기 부부’ 택했다…의대 광풍에 지방행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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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초등생에서 직장인까지 의대 준비 ‘열공’ 현장 

“초6 여름방학에는 준비 시작해야… 한의대 입시 문의도 부쩍 늘어”
“과학 몰라도 의대 입학 가능… 직장인 수학 과외비 천정부지 치솟아”

의대 증원 확대가 전국 사교육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전년 대비 1509명 늘어난 4567명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의 한 의약학전문학원. / 사진:연합뉴스

의대 증원 확대가 전국 사교육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전년 대비 1509명 늘어난 4567명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의 한 의약학전문학원. / 사진:연합뉴스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사교육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올해 고등학생 3학년부터 해당되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전년 대비 1509명 늘어난 4567명이다. 고등학생 2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6학년도 의대는 정부 발표대로 2000명이 증원된 5058명의 신입생을 뽑을 전망이다. 의대 증원이 공식화되자 서울 대치동·목동 등 ‘사교육 명당’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직장인 의대반’ 개설이 대표적이다. 편입 학원 열기도 뜨겁다. 반수생이 올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의대 증원이 불러온 사교육 시장의 열기를 취재했다.

학원 관계자, 직장인에 “과학 몰라도 의대 진학 가능”

지난 5월 마지막 주, 기자는 의대반으로 유명한 강남 서초동의 한 학원을 찾았다. 이 학원 간판인 ‘○○○학원 의약학전문관’에서 읽히듯, 모든 커리큘럼은 의대와 약대 입시에 맞춰져 있었다. “안녕하세요”라는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장인이신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맞다”고 답하자 간단한 입학시험을 보자고 했다. 입학시험에서 큰 문제만 발견 안 되면, 당일 오후 수업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학원비는 67만원이었다. 다만, 학원 공식 팸플릿에는 ‘직장인 의대반’이라는 글귀를 찾을 수 없었다. 학원 관계자는 “직장인이라고 적혀 있지 않을 뿐, (야간반) 수강생은 전원 직장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의대 증원이 최종 확정되기 이전인 올해 3월 말~4월 초 직장인 의대 열풍이 본격화했다.

수업은 매일 오후 7~10시, 총 3시간이었다. 커리큘럼은 국어(문학·독서), 수학(수학Ⅱ·미적분), 영어로 구성됐다. 수학Ⅰ은 녹화 강의를 무료로 제공한다. 학창 시절 ‘수포(수학 포기)자’에 가까웠던 기자가 당황해하자 이 관계자는 “문과도 충분히 (의대 입학이) 가능하다”며 안심시켰다. 다만, 오는 9월 모의고사까지는 ‘미적분’을 어느 정도 소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직장인 의대 진학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며 “문과, 이과 구분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첫 문·이과 통합수능은 지난 2021년도 11월에 치러진 2022학년도 수능이다. 그 이전까지는 문과생과 이과생으로 나눠 수능을 봤다.

그는 “올해는 문과 출신도 의대 진학을 노려볼 만하다”며 “과학탐구(과탐) 없이 사탐만으로 의대 진학이 가능한 첫해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과탐 없이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자와 같은 문과 출신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인들이 ‘용기’를 얻고 학원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도 했다. “문과생이라도 과거 국어, 영어, 사탐을 충실히 공부했다면, (의대 진학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그의 말에 순간 야간반을 등록할 뻔했다.

다만, 사탐만으로 수능을 치를 경우, 상위권 의대 진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사탐 두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표점(표준점수)에서 (과탐 응시생에) 밀린다”며 “아무리 의대 정원이 늘어나도, 과탐을 한 과목 정도는 만점 받을 정도로 준비해야 ‘인서울’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학원 입장에서는 수능이 얼마 안 남은 현 시점에서 기자와 같은 문과 출신 직장인들에게는 과탐을 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탐 두 과목으로 대입을 치르겠다면, 한의대도 권하고 싶다. 요즘 의대만큼이나 인기 많은 상담이 바로 한의대 입시 관련 문의”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 과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오는 11월 수능을 앞두고 약 6개월간 소위 ‘스파르타’ 수학 과외만 받기로 했다는,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27세 남성 안모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15년 11월 수능을 봤다. 수능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 8년이 다 돼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가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의대 진학’이란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함이다.“(2015년도 11월 치른) 2016학년도 수능에선 국어와 영어, 사탐은 모두 1등급을 받았다”는 그는 요즘 퇴근 이후 매일 수학 공부에 올인하고 있다. “고민은 수학이다. 현역 수능에서 (수학) 3등급을 받았다. 다만, 나머지 과목인 국어, 영어, 사탐에 자신이 있다. 수능까지 남은 6개월간 수학 공부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안씨가 한 달 수학 과외에 지출하는 비용은 대략 170만원이다. 350만원인 그의 월급의 절반을 수학 과외에 쓰는 셈이다. “수학 과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의대 진학은 결국 수학, 그중에서도 미적분이 최대 쟁점이기 때문이다.” 안씨의 설명이다.

수학 전문반 한달 수강료가 175만원

비수도권 지역인재전형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 기러기 부부’가 늘고 있다. 오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고등학교 총 6년을 비수도권에서 나와야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수도권 지역인재전형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 기러기 부부’가 늘고 있다. 오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고등학교 총 6년을 비수도권에서 나와야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후 기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주요 고객층인 강남 한티역 인근 한 소규모 학원을 찾았다. 오후 4시 30분인데도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원 1층에 위치한 편의점에는 학원 수강생들로 보이는 중학생들이 종이를 들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마저 끝내지 못한 학원 과제를 급히 마무리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학부모시죠?” 학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데스크에 앉아 있던 학원 관계자가 기자에게 물었다. “네, 학부모입니다”라고 답하자 그는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내 학원 부원장이 나와 20분 정도 상담을 이어갔다. 수학 강사이기도 한 부원장은 매일 고정 강의만 7시간을 하는 ‘스타 강사’였다. 스타 강사인 만큼, 의대 진학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다만 상담 내용이 귀에 안 들어왔다. 상담실 옆에 붙은 ‘수강료 안내’ 종이에 적힌 수강료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종합반(국·영·수·탐) 한 달 과정이 ‘340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이를 눈치챈 그는 “저희는 소수 정예 학원입니다. 만약 자녀분께서 국어,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수학만 수강하면 됩니다. 물론 종합반보다는 보다 저렴합니다”라고 안심시켰다. ‘보다 저렴하다’는 말에 앞선 서초동 직장인 의대반 수강료인 67만원을 기대했으나, 부원장은 수학 전문반 가격으로 175만원을 제시했다.

“자녀가 몇 학년이라고 했죠?” 부원장이 대뜸 물었다. ‘고2’라는 말에 부원장은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은) 의대 입시 전선에 뛰어들기에는 늦은 나이”라며 “보통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는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 모의고사 등급을 적어달라는 말에 기자는 ‘수학 3등급’, ‘국어 2등급’, ‘사탐 2등급’을 적어냈다. 이에 부원장은 “하위권 의대를 노려볼 만하다”며 “상술이 아니다. (올해) 의대 1509명 증원은 크다. 지금부터 국어와 사탐을 모두 1등급으로 만들면 가능성이 있다”고 격려했다. 다만 국어와 사탐이 2등급이란 점에서 340만원인 종합반 등록을 권한다고 했다.

한달 340만원이라는 비싼 수강료는 기자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특히 ‘수학 수업, 175만원’이라는 부원장의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수학 과외 시장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수소문 끝에 요즘 잘 나간다는 수학 과외교사를 만났다. 서울 관악구 일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만 23세 대학생 윤모 씨(남)였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자신의 수업료에 대해 “천지차이”라고 답했다. “올림피아드 준비반은 시급 20만원까지 올라간다. 방학인 요즘, 많이 벌면 수학 과외만으로 400만원은 쉽게 번다”고 말했다. 기자가 놀란 표정을 짓자 “영재반, 특히 올림피아드 준비반이 아니면 보통 강의료는 시간당 5만~7만원”이라며 안심시켰다. 수능 D-데이가 임박하면서 대치동 유명 강사의 수업료(과외)는 시간당 최소 10만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말부터 의대 문의가 급증했다. 요즘은 시급 10만원이면 수업을 거절한다. 시간당 15만원 이상 강의 제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이다. 비수도권 의대는 올해 ‘지역인재전형’ 선발 규모를 대폭 늘렸다. 지역인재전형이란 해당 지역 수험생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다. 이 때문에 의대 진학에 유리한 비수도권으로 일찌감치 이주하는 ‘지방 유학’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녀를 위해 부부 중 한 명은 비수도권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 거주하는 만 36세 여성 권모 씨가 대표적이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권씨는 “딸아이를 위해 부산으로 이사 갈 생각”이라고 했다. 여의도 증권가에 재직 중인 남편은 서울에 남기로 했다. 대신, 공기업에 다니는 권씨는 “난 서울 토박이다. 부산으로 갈 거라곤 꿈에도 생각 안 했다. 딸아이의 미래(의대 진학)를 위해선 기러기 부부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수학 과외교사 “시급 15만원 강의 제안 받았다”

의대 정원 확대 이후 로스쿨 준비생들 사이에서 편입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대전의 한 의과대학 교수·전문의들이 이동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 이후 로스쿨 준비생들 사이에서 편입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대전의 한 의과대학 교수·전문의들이 이동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권씨는 자신이 “그나마 운이 좋다”고 설명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만큼, 부산에서도 일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권씨는 “내가 아는 학부모 중에는 휴직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는 아이를 위해 퇴사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퇴사를 고려하는 이유는 오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고등학교 총 6년을 비수도권에서 나와야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입 학원을 찾았다. 늦은 시간에도 학원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학원 인근 카페에서 편입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기도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만 21세 김모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대학)1학기 종강 직후 편입 학원으로 달려온 휴학생”이라고 말했다. 다음 학기 편입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입대를 미뤘다고 했다. 편입의 길에 들어선 이유를 묻자 그는 “전과(轉科)”라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전과와 편입의 상관관계를 묻자 그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전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공부를 놓게 됐다. 현재 학점이 2점대 후반인 이유”라며 “우리 학교는 전과의 기회를 3학기(2학년 1학기) 재학생에게 한 차례 부여한다. 대학 시절 전과의 기회가 딱 한번 주어지는 거다. 현재 2점대 학점으로는 전과가 불가능하다”고 한탄했다.

조심스레 이유를 묻자 그는 “전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점이) 4점대여야 한다.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처럼 본전공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전과의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럼에도 학점 4점대 학생들이 취업이 잘되는 과를 골라가는 게 현실”이라며 대다수 학교가 우수한 학점을 지닌 학생들에게 전과의 기회를 부여한다고 토로했다. 편입 학원에 자신처럼 전과에 실패해서 등원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최근의 편입 바람도 의대 증원과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다.

의대 증원이 몰고 온 편입 열기

의대 증원으로 올해 많은 대학교에서 결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겠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김씨와 같은 전과 희망생만 의대 증원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로스쿨 준비생들은 “올해 하반기 있을 편입 시험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정부의 의대 증원을 반겼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 다니는 만 24세 남성 이모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비교적 늦게 편입 열차에 올라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을 물으면 항상 ‘법률가’라고 적어냈다. 자연스레 성인이 된 이후 로스쿨을 알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목표로 하는 대학을 묻자, 그는 1초도 망설임 없이 “신촌에 있는 S대학교와 대학로에 있는 S대학교”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에 진학해야 자교 쿼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법률가가 되기 위해선 그 두 대학 학부를 졸업한 이후 동대학 로스쿨에 진학할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로스쿨 지망생 중 편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로스쿨 준비생들이 늘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로스쿨 입학에선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보다 학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의대 열풍이 몰고 온 편입 바람에 대비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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