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한밤에도 이 산길 넘었다…'절친 우정'이 만든 명품 숲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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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영 트래블③ 트레일

전남 강진의 '다산오솔길'.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이 머물렀던 초당과 고개 너머 백련사를 잇는 길이다. 사진은 백련사 차밭. 녹음 우거진 여름이어서 사방이 온통 푸르다. 손민호 기자

전남 강진의 '다산오솔길'.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이 머물렀던 초당과 고개 너머 백련사를 잇는 길이다. 사진은 백련사 차밭. 녹음 우거진 여름이어서 사방이 온통 푸르다. 손민호 기자

강해영은 전남 강진·해남·영암 세 개 고장이 연합해 구축한 관광 브랜드다. 이 세 고장의 관광 콘텐트를 소개하는 week& 연재기획이 ‘강해영 트래블’이다. 4월에는 강해영 세 고장의 대표 향토음식을 다뤘고, 5월에는 전통 숙소와 숙박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6월에는 이들 세 고장의 이름난 트레일(걷기여행길)을 걷는다. 강진에는 다산이 수없이 오르내렸던 오솔길이 있고, 해남에는 금강 스님이 손수 일군 산길이 있고, 영암에는 월출산 기운을 품은 숲길이 있다. 길을 걷는 건, 누군가의 흔적을 되밟는 행동이다. 강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강해영의 길을 걷는 건, 남도 사람과 같은 숨을 쉬는 일이다.

강해영 트래블 연재 순서

강진 다산오솔길

다산 초당.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이 약 10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주요 저서 대부분이 생산됐다. 손민호 기자

다산 초당. 유배 시절 다산 정약용이 약 10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주요 저서 대부분이 생산됐다. 손민호 기자

강진은 다산의 고장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남도 끄트머리 강진에서 18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강진으로 내려왔을 때 서른아홉 살이었던 다산은 쉰여섯 중늙은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세월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권이 넘는 저작 대부분을 집필했다. 다산의 집필활동은 만덕산(408m) 남쪽 자락 초당에서 보낸 10여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초당의 다산이 집필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다산은 강진에서 벗을 얻었다. 백련사 주지 혜장(1772~1811)이다. 실학자와 승려는 차(茶)로 이어졌다. 다산은 차를 좋아했고, 혜장은 차에 밝았다. 예부터 만덕산은 차로 유명했고, 만덕산 아랫자락의 백련사는 아직도 차밭을 가꾸고 있다.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군락지다. 붉은 동백꽃 없는 백련사 동백숲을 처음 걸었다. 꽃이 없어도 좋았다. 손민호 기자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 군락지다. 붉은 동백꽃 없는 백련사 동백숲을 처음 걸었다. 꽃이 없어도 좋았다. 손민호 기자

초당에서 머물던 시절 다산은 백련사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무던히도 넘었다. 벗도 만나고 차도 구하기 위해서였다. 백련사에서 초당까지 1㎞ 남짓한 고갯길을 ‘다산오솔길’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다산이 삼경(三庚), 그러니까 자정 즈음에도 횃불 앞세우고 산길을 걸어 혜장을 만났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선비와 승려가 오간 길이었으니, 유교와 불교가 만난 길이다.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 가는 고갯길. 숲이 생각보다 깊어 내내 그늘이 드리웠다. 손민호 기자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 가는 고갯길. 숲이 생각보다 깊어 내내 그늘이 드리웠다. 손민호 기자

다산오솔길은 원래 봄날에 걷기 좋은 길이다. 백련사와 차밭 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숲이 있어서다. 걸어보니 여름에도 좋았다. 숲이 생각보다 깊어 그늘에서 걸을 수 있었다. 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고갯길은 1㎞ 남짓한 거리지만, 백련사 아래 주차장에서 초당 아래 다산박물관까지는 2㎞가 넘는다.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산박물관에서 초당까지 이어진 숲길에 최근 야자 매트가 깔렸다. 원래는 나무뿌리가 드러나 ‘뿌리의 길’이라 불렸는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정비했다고 한다.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 83코스가 다산 오솔길을 지난다.

영암 기찬묏길

전남 영암의 대표 트레일 ‘기찬묏길’의 1구간 ‘생태(자연)의 길’ 황톳길. 영암 주민이 신발을 벗고 그늘 그윽한 숲길을 걷고 있다. 손민호 기자

전남 영암의 대표 트레일 ‘기찬묏길’의 1구간 ‘생태(자연)의 길’ 황톳길. 영암 주민이 신발을 벗고 그늘 그윽한 숲길을 걷고 있다. 손민호 기자

영암의 ‘기찬묏길’은 표기법이 특이하다. ‘기(氣)’ 자를 굳이 한자로 써 ‘氣찬묏길’이라 한다. 그만큼 기운을 중시한다. 어디의 기운이냐. 영산(靈山) 월출산(810m)의 기운이다. 월출산 북쪽 기슭을 따라 기찬묏길이 이어진다. 기찬묏길은 월출산 북쪽 자락길이자 월출산을 채 두르지 못한 둘레길이다. 천황사, 월출산 기찬랜드, 왕인박사 유적지 등 영암의 주요 명소도 기찬묏길이 꼬박꼬박 들른다.

길은 더할 나위 없이 걷기에 좋다. 하나 길 정보는 엉망이다. 지도와 안내판에 표시된 코스 정보가 다르다. 영암군에서 제작한 기찬묏길 지도를 보면 기찬묏길은 모두 4개 구간 총 15㎞ 길이의 트레일이다. 그러나 기체육공원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3개 구간 18㎞ 길이로 표시돼 있다. 놀랍게도 길은 같은 코스를 지난다. 두 개 중의 하나는 길 정보가 틀렸다는 얘기다. 일부 갈림길에선 이정표가 없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영암의 대표 명소 '월출산 기찬랜드'의 한옥 숙소 기찬재. 뒤에 보이는 산자락이 월출산이다. 손민호 기자

영암의 대표 명소 '월출산 기찬랜드'의 한옥 숙소 기찬재. 뒤에 보이는 산자락이 월출산이다. 손민호 기자

그럼에도 기찬묏길은 걸을 만한 길이다. 몇몇 구간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트레일이어서다. 특히 기체육공원과 월출산 기찬랜드를 잇는 ‘힐링의 길’ 2㎞ 구간과 천황사에서 기체육공원까지의 ‘생태(자연)의 길’ 4.5㎞ 구간은 그늘 드리운 완만한 숲길이어서 한여름에도 걷기에 좋다. ‘힐링의 길’에는 황토를 깐 맨발 걷기 구간도 있고, ‘생태(자연)의 길’은 중간에 노송 우거진 솔바람숲을 지난다.

기찬묏길 중간의 월출산 기찬랜드는 영암의 대표 명소다. 한옥 숙소 ‘기찬재’를 비롯해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영암곤충박물관, 가야금산조기념관 등이 모여 있다. 흥미로운 곳은 조훈현바둑기념관이다. 영암 출신 바둑기사 조훈현 9단의 바둑 인생이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제1회 응씨배 우승컵이 여기에 모셔져 있는지 몰랐다.

해남 달마고도  

전남 해남 미황사 입구. 절집 뒤로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를 손수 일군 금강 스님이 달마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달마고도'도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전남 해남 미황사 입구. 절집 뒤로 달마산이 보인다. 미황사를 손수 일군 금강 스님이 달마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달마고도'도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불교에서는 길을 걷는 것도 수행이다. 포행(布行)이라 한다. 길을 걷는다고 깨달음을 얻을까 싶지만, 적어도 세상사 시름 따윈 잊게 된다. 포행에 가장 어울리는 길이 해남에 있다. 달마산(498m) 중턱을 연결한 ‘달마고도’다. 달마고도는 불교적 기운으로 충만하다. 중국 선승 달마 대사의 이름을 딴 달마산에 난 산길인 데다, 달마산 미황사를 손수 일군 금강 스님이 복원한 옛길이어서다.

달마고도는 미황사 사천왕문에서 시작해 달마산 중턱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모두 4개 코스로 전체 길이는 17.74㎞다. 2017년 조성했는데, 길을 내게 된 사연이 있다. 당시 미황사 주지였던 금강 스님의 말이다.

“옛날 미황사가 암자 12개를 거느린 큰 절이었던 시절, 암자를 잇는 옛길이 있었어요. 그 길을 다시 잇고 싶었어요. 옛길을 찾고 다시 잇는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미황사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경덕왕 8년(749)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19세기 이후 한동안 버려졌었다. 폐사지나 다름없던 미황사를 되살린 주인공이 금강 스님이다. 지게로 바위를 나르고 손수 돌담을 쌓아 옛 가람을 다시 일으켰다. 1989년 미황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금강 스님은 2001년부터 20년간 주지로 미황사를 이끌었다. 그 사이 미황사는 전국구 사찰로 거듭났다. 보물로 지정된 미황사 대웅보전이 2022년부터 해체복원공사에 들어갔다. 이르면 내년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달마고도를 걷고 있는 스님. 달마고도는 미황사 전 주지 금강 스님이 옛길을 복원해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달마고도를 걷고 있는 스님. 달마고도는 미황사 전 주지 금강 스님이 옛길을 복원해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달마고도는 흔한 데크로드 하나 없는 순전한 숲길이다. 길은 미황사에서 냈지만, 현재 운영은 해남군청에 주도한다. 코로나 사태에도 거의 매주 주말 걷기 행사를 진행했고, 스탬프 프로그램을 운영해 완주 메달을 나눠줬다. 크게 어려운 구간은 없으나 워낙 길어 7시간 정도 걸어야 완보할 수 있다. 남파랑길 90코스 전반부 약 5㎞가 미황사에서 시작하는 달마고도 4코스와 고스란히 포개진다.

📝 강해영 시티투어

해남 땅끝탑. 한반도 최남단 땅끝 지점에 조성됐다. 땅끝탑 앞에서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과 서해안 종주 트레일 ‘서해랑길’이 만난다. 손민호 기자

해남 땅끝탑. 한반도 최남단 땅끝 지점에 조성됐다. 땅끝탑 앞에서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과 서해안 종주 트레일 ‘서해랑길’이 만난다. 손민호 기자

전남 강진·해남·영암의 공동 관광 브랜드 ‘강해영’이 첫 합동 상품을 출시했다. 세 개 고장의 명소를 두루 돌아보는 시티투어 패키지여행이다. ‘강해영 시티투어’는 매주 토요일 모두 27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출발한다. 강진·해남, 해남·영암, 영암·강진 세 개 루트가 각자 다른 여정을 3개씩 꾸려 모두 9개의 여행상품을 만들었고, 이 9개 상품이 번갈아가며 3차례씩 운용된다. 이를테면 29일 출발하는 해남·영암 상품은 해남 땅끝전망대∼대흥사∼포레스트 수목원 등을 둘러보고 영암 도갑사∼영암도기박물관 등을 방문한다. 다음달 6일 출발하는 영암·강진 상품은 기찬랜드∼기찬묏길∼도갑사∼백련사∼다산초당∼사의재 마당극 공연 등의 여정으로 구성된다. 1박2일 1인 9만9000원(2인실 기준). 식사 1끼 제공, 20인 이상 출발. ‘여행공방(tour08.co.kr)’이 운영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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