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전철역 옆에도 폐가…2040년, 서울도 '빈집 쓰나미'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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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의 빈집. 외벽이 붕괴한채로 방치돼 있다. 용인 = 김원 기자

용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의 빈집. 외벽이 붕괴한채로 방치돼 있다. 용인 = 김원 기자

최근 방문한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역 인근의 빌라촌. 용인시청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의 구도심인데, 대로변에는 수년 지난 폐가가 여럿 방치돼 있었다. 외벽이 무너져 내린 채로 방치된 집,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로 가득찬 빈집, 건축폐기물이 어지럽게 방치된 공터도 눈에 띄었다. 이곳의 한 주민은 “용인고 통학로에 빈집 여러 채가 버젓이 방치되고 있는데, 시에서는 관리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의 그늘…늘어나는 빈집]

26일 용인시에 따르면 이 지역은 2009년 재개발 예비구역(역북1구역)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는 탓에 재개발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주민이 없었다. 결국 재개발 사업이 초기부터 난관에 부닥쳤고, 빈집도 늘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문모씨는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원주민도 있고, 외지인이 재개발 투자를 위해 집을 매수했다 비워 놓은 사례도 있다”면서 “이 중에는 매물로 내놓은 집도 있는데, 수년째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국 빈집 151만 가구...25년간 4배 증가한 빈집 

방치되는 빈집이 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0년 통계청의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전체 주택 재고량의 8.2%(약 151만 가구)를 차지한다. 1995년 36만 가구에서 25년간 4배 넘게 증가했다. 1년 이상 방치된 빈집도 전국에 39만 가구(2.1%) 가량이다. 인구가 감소 중인 면단위 농어촌 지역의 빈집은 재고량의 17.9%에 달한다.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 빈집 수와 비중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일부 초고가 아파트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처럼 저출산·고령화가 드리운 그늘이 짙어지기 시작한 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빈집이 늘어나는 건 이론적으로 주택 초과 공급의 여파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주택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은 102.1%. 특히 인구감소지역이 많은 경북(113.2%)·전남(112.4%)·충북(111.6%) 등은 110%가 넘어 주택이 남아돈다. 울산(108.4%)·세종(105.6%)·광주(105.2%)·부산(102.6%)·대구(101.4%) 등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고 수도권 집중화가 나타나면서 인구가 줄어든 탓이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선 주택 소유주의 고령화, 상속 등의 이유로 방치되는 빈집이 늘고 있다.

“가구 수 정점찍는 2039년 이후 빈집 폭증”

집값 하락(주택가치 하락)도 빈집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도심 빈집의 대부분은 노후주택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의 중단 등에 의해 나타나는데, 사업성이 떨어지면 정비사업을 진행할 유인이 약해진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 정비사업은 주택 소유주의 이익에 의해 실행되는 구조”라며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도시 재정비도 멈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가구 수 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40년이면 서울·수도권 도심에서도 빈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를 보면 2033년부터 연간 가구 증가 폭이 10만 가구 밑으로 떨어지며, 2039년 정점을 이룬 뒤 가구 수가 줄어든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학계에서는 주택 공급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가구 수(총 주택 수요)가 정점을 이루는 2040년을 전후해 집값이 하락 추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한다. 주택 수요가 공급량(재고량)에 미치지 못하면 가격 하락이 나타난다는 논리다. 2040년에는 전국 재고 주택의 30% 가량인 855만 가구가 40년 이상의 노후 주택이 된다. 이용만 교수는 “노후 주택 증가와 집값 하락이 맞물리면 정비사업이 멈추고 빈집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며 “2050년경에는 전체 재고의 13%(324만 가구)가 빈집으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전염성 있는 빈집, 선제 대응이 필수

빈집 증가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마을의 슬럼화가 진행하면서 주거환경은 열악해지고, 주변 지역의 집값 하락을 초래한다. 재개발ㆍ재건축을 비롯한 도시 재정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정부도 주거 인프라 개선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진다. 또 쓰레기 불법 투기 등에 따라 위생이 악화하고 도시 미관을 저해한다. 노후 건축물의 붕괴에 따른 안전사고나,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는 등 2차 피해도 우려된다. 실제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해 빈집에 들어와 불을 피우다 사고가 발생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빈집은 한 번 생기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다. 국토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빈집은 군집성이 나타나며 인근에 빈집이 증가하면 특정 주택이 빈집이 될 확률이 증가하는 전염 효과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빈집이 증가하면 주변 아파트 가격은 약 2965만원 하락한다’(한국주거환경학회 논문) 등의 연구결과도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다 보면 각종 문제점이 확산하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빈집은 주요 선진국의 골칫거리가 된지 오래다. 빈집이 899만 가구로, 총 주택 중 비중이 13.8%에 달하는 일본은 빈집이 10만채 늘면 1조5000억엔(약 13조원) 가량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 (클라소네 분석) 미국에서 빈집은 인근 지역 범죄율을 19% 증가시키고,  빈집이 2.8가구 증가할 때마다 지역 범죄율은 6.7% 증가한다.

한국에선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지방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빈집 철거로 생긴 토지에 대한 재산세가 빈집이 있을 때 내던 주택에 대한 재산세보다 높은 역전현상을 완화했다. 지난달에는 전국 83곳의 인구감소지역 주택을 추가로 매입해도 1가구 1주택자로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세컨드홈’ 대책을 발표했다. 또 지난해 농어촌정비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7월부터 지자체장이 빈집의 소유자에게 직권 철거 등 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고, 소유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1년에 2회 이내의 범위에서 반복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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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멍은 여전하다. 현재 빈집 관리에 관한 법은 도시 지역의 경우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받고, 농어촌지역은 ‘농어촌정비법’을 따른다. 이에 도시 빈집 관리는 국토교통부가, 농어촌 빈집은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가 각각 맡는다. 각 지자체에서도 빈집 관련 조례를 지정하고,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부처마다 파악하는 통계가 다르고, 빈집 활용에 대한 정책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빈집 실태 조사도 5년마다 실시하는 걸로 규정돼 있지만 이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집은 전염성이 있어 좀 더 자주 실태파악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토지공법학회 논문)

용인 에버라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에 방치된 빈집.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용인=김원 기자

용인 에버라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에 방치된 빈집.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용인=김원 기자

관리도 통계도 ‘일원화’ 필요

통계도 일원화 관리가 필요하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151만 가구인데, 이는 센서스 국제기준인 UN권고안에 따라 조사 시점에 비어있는 집을 모두 집계한 수치다. 2022년 국토부가 조사한 도시 빈집은 4만2356가구,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농어촌 빈집은 8만9696가구로 차이가 크다.

이에 국토부는 농림부·해수부와 함께 지난해 6월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각 지자체에 배포하고, 빈집정보시스템을 통합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한국부동산원이 지자체의 의뢰를 받아 빈집 실태 조사와 정보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는데 이마저도 완벽하지 않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부동산원에) 빈집 조사를 의뢰하지 않거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제대로된 실태 파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인 에버라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에 방치된 빈집. 쓰레기 가득 쌓여 있다. 용인=김원 기자

용인 에버라인 김량장역 인근 빌라촌에 방치된 빈집. 쓰레기 가득 쌓여 있다. 용인=김원 기자

김진유 교수는 “팔리지 않아 방치된 지방 빈집의 해소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가구 수에서 제외해 거래세, 보유세 등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며 “도심의 투기성 빈집에 대해선 빈집세를 매기고, 정비사업 지연으로 인한 빈집에 대해서는 용적률 상향, 사업지원 등 도시계획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빈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의 재고량만큼 실거주 수요가 생겨야 하는 것”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 지방 일자리 확충 등을 통해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거주 유인을 제공하고, 아울러 주택을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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