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가연구 부작용 처벌받나…포항지진 사건 5년 만에 이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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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 전역을 강타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포항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 모여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 전역을 강타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포항 북구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 모여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국가 기술연구 사업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까지 긴급 연기시킬 정도의 대규모 지진의 원인이 됐다면 그 사업을 수행한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2017년 발생한 ‘포항 지진’이 국가의 지열발전 사업에 의한 인재(人災)였다는 의혹을 5년간 수사해온 검찰이 공소시효를 5개월 남기고 관할 청을 교체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4일 담당 검사와 함께 이 사건을 대구지검 포항지청으로 이송했다. 검찰 관계자는 “남은 피해자·피의자 조사의 지리적 인접성, 기소 시 공소유지 용이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소시효 임박해 이송…檢 “지리적 요인”

앞서 포항지청은 서울중앙지검 요청으로 피해자 조사를 맡아 이달 촉탁수사를 마무리했다. 진술이 필요한 피해자가 170여 명에 이르고, 주로 포항 시민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당초 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 수사팀은 이를 바탕으로 지열발전 사업 주관사인 넥스지오 대표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고심해왔다. 사업 관리·감독 책임자인 산업통상자원부나 컨소시엄 참여사였던 포스코 등에 대해선 직접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보고 무혐의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지진 위험 조사 없이 사업 연장을 승인하는 등 담당 과제를 부실하게 관리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기평) 연구원들, 시스템 불안정을 이유로 보유한 지진계 14개 중 1개만을 연결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 관계자 등에 대해서는 형사책임 소재를 따져보던 단계였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 공이 포항지청에 넘겨진 것이다.

올 1월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추가 고발장을 들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1월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추가 고발장을 들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법원 모두 ‘인재’ 인정…형사만 남아

이 사건 수사는 2019년 피해 시민들의 고소로 시작됐다. 수사의 핵심은 지열발전소 측에 지진 사망자 1명과 부상자 117명(여진 포함 시 135명)에 대한 과실 책임을 적용할 수 있는가였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당시 기술 수준과 관리 체계 등을 고려했을 때 지진을 충분히 예견·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조치하지 않았다면 성립한다.

지난 2019년 3월 정부조사연구단은 1년 간의 정밀조사 끝에 지열발전소가 지열을 끌어올리기 위해 판 구덩이(지열정)에 반복적으로 물을 주입한 과정이 2016년부터 꾸준히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을 일으켰고, 그 영향으로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윤운상 넥스지오 대표, 박정훈 포항지열발전 대표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듬해 감사원도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해, 넥스지오·포스코·지자연 등이 참여한 지열발전 컨소시엄은 ‘미소진동 관리방안’을 부실하게 수립했고, 산자부와 그 산하 기관인 에기평은 지진 위험 분석과 대비 업무에 소홀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형사 양쪽에 상징적 사건…수사 곧 결론

법원도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 1심은 범대본이 모은 포항 시민 5만여 명이 국가와 넥스지오·포스코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시민 손을 들어줬다. 2017년 11월 본진과 2018년 2월 여진을 모두 겪은 경우 300만원, 둘 중 하나만 겪은 경우 200만원을 주라는 판결이다.

승소가 알려진 뒤 범대본에는 약 50만명이 항소심 추가 접수를 위해 몰렸다. 포항 시민 10명 중 9명은 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1심 판결 기준으로 총 위자료 예상액만 1조5000억원, 법정 이자율을 포함하면 배상액이 2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집단소송’이 된 상태다.

지난 2월 경북 경주시 안강읍 북경주행정복지센터 인근 공터에 한 법률사무소가 마련한 '포항지진 피해 소송 접수처' 앞으로 추가 소송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경북 경주시 안강읍 북경주행정복지센터 인근 공터에 한 법률사무소가 마련한 '포항지진 피해 소송 접수처' 앞으로 추가 소송에 참여하려는 주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민사 책임이 인정됐어도 이와 별개로 개인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훨씬 까다로운 입증이 필요해 수사가 길어졌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수사 결과에 따라 향후 나올 수 있는 도전적인 연구들이 위축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며 “국가가 선한 의도로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을 시도하다가 부작용이 났을 때 개인의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가에 대한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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