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내려놓고 바벨 들어 올릴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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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여자 역도 최중량급 대표 박혜정은 도쿄에서 끊긴 한국 역도의 메달 명맥을 8년 만에 이어갈 유력 후보다.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금메달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마음을 비우고 바벨을 들어 올리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성룡 기자

여자 역도 최중량급 대표 박혜정은 도쿄에서 끊긴 한국 역도의 메달 명맥을 8년 만에 이어갈 유력 후보다.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금메달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마음을 비우고 바벨을 들어 올리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성룡 기자

“첫 출전이라서 그런지 벌써 떨리네요.”

여자 역도 최중량급 국가대표 박혜정(21·고양시청)에게 파리올림픽(여자 81㎏ 이상급)에 출전하는 소감을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훈련이 시작되자 미소는 사라지고 표정부터 달라졌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바벨을 들어 올리는 박혜정에게서 한국 역도 최중량급 간판스타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역도 요정'으로 불리는 박혜정. 경기 중엔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한다. 김성룡 기자

'역도 요정'으로 불리는 박혜정. 경기 중엔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한다. 김성룡 기자

한국 역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역도 관계자들은 박혜정이 2016 리우올림픽 윤진희(53㎏급 동메달)에 이어 8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딸 거라고 확신한다. 박혜정이 파리에서 메달을 따내면 금·은·동메달을 하나씩 획득한 ‘역도 여제’ 장미란(41·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후 명맥이 끊긴 ‘한국인 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 메달리스트’가 다시 탄생한다. ‘제2의 장미란’으로 불리는 박혜정을 2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났다. 파리올림픽 최중량급 기준은 세계선수권이나 아시안게임의 87㎏ 이상이 아닌 81㎏ 이상이다.

박혜정은 '장미란 키드'다. 장미란의 활약을 보고 역도에 입문했다. 연합뉴스

박혜정은 '장미란 키드'다. 장미란의 활약을 보고 역도에 입문했다. 연합뉴스

박혜정은 대표적인 ‘장미란 키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장미란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최중량급(당시 75㎏급 이상급) 금메달을 따는 영상을 보고 역도에 입문했다. 투포환 선수 출신 어머니에게 타고난 운동 신경과 힘을 물려받은 박혜정은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는 경기 안산 선부중 3학년 때 합계 255㎏을 들어 올려 장미란이 고2 때 세운 기록(235㎏)을 넘어섰다. 장미란이 고3 때 합계 260㎏을 들어 올렸지만, 박혜정은 고교 입학 후 처음 치른 대회에서 267㎏을 들어 올려 가볍게 기록을 넘어섰다.

성인이 된 그는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과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역도에서 우승한 건 2010년 광저우 대회 당시 장미란(당시 75㎏ 이상급) 이후 13년 만이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역도는 중국·북한 등 아시아권 선수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넘버1’이면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쥘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현재 박혜정은 ‘최중량급 세계 1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를 석권할 당시엔 ‘최강자’ 리원원(24·중국)이 출전하지 않았다. 리원원은 3개 부문 세계 기록(인상 148㎏, 용상 187㎏, 합계 335㎏)을 보유한 세계 최강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팔꿈치를 다친 리원원은 줄곧 휴식을 취하다 지난 4월 태국에서 열린 국제역도연맹(IWF) 월드컵 때 돌아왔다. 복귀하자마자 합계 325㎏을 기록하며 여자 87㎏ 이상급 우승을 차지했다. 그 대회에서 박혜정은 한국 신기록인 합계 296㎏(인상 130㎏, 인상 166㎏)을 들어 올려 리원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박혜정의 올림픽 목표는 메달 획득이다. 김성룡 기자

박혜정의 올림픽 목표는 메달 획득이다. 김성룡 기자

현재 세계랭킹 1위 리원원의 기록은 합계 325㎏(인상 145㎏, 용상 180㎏)이다. 2위 박혜정(인상 130㎏, 인상 166㎏, 합계 296㎏)과는 30㎏ 가까이 차이가 난다. 기록만 따지면 박혜정이 리원원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박혜정은 메달 욕심을 버리고 경기에 나서겠다고 했다. 박혜정은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봤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더 어려운 도전이다.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금메달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은메달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바벨을 들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리올림픽은 내게 새로운 시작이다. 서두르지 않고, 2028 LA 올림픽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우상인 장미란은 첫 올림픽이었던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두 번째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혜정도 선배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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