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북·중 연결고리 지린성 위원중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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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에 있는 김일성 모교인 위원중학교

중국 지린성에 있는 김일성 모교인 위원중학교

북한과 중국은 올해를 조중친선의 해(朝中友好年)로 정하고 연초부터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은 하이라이트였다. 그 외에도 특히 북·중 우호를 상징하는 장소를 양측 주요 인사들이 상호 방문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위원 중학교다. 이 학교가 북·중 우호의 상징이 된 것은 김일성이 1927년 6월부터 1929년 가을까지 다녔기 때문이다. 왕야쥔 주북한 중국대사가 지난 5월 19일 중국 지린성 지린시에 있는 이 학교를 방문했다. 왕야쥔 대사는 왜 이곳에 갔을까? 북한 대표단이 방북했다면 이해되지만, 주북한 중국대사가 방문한 것에 궁금증이 생긴다. 조중친선의 해를 맞아 여러 이벤트 가운데 하나라고 억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왕야쥔이 방문할 정도면 이 학교가 북·중 우호에서 상징하는 바가 많다는 것이다.

학교에 도착한 왕야쥔은 먼저 김일성 동상에 헌화했다. 학교에는 3m 높이의 군복 차림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다. 위원 중학교가 만든 홍보 동영상에도 김일성 동상이 등장한다. 왕야쥔은 학교에 있는 ‘김일성 독서기념실’ 등을 둘러봤다. 장궈푸 교장은 “위원 중학교가 김일성 청년기의 성장 과정을 영광스럽게 지켜봤다"라며 “북·중 우호의 가교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 중학교는 1917년 지린시의 저명인사가 정부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중학교를 만들고자 톈진의 난카이 중학교를 본떠서 창립한 사립중학교다. 

이 학교가 명문이 된 것은 교사로 재직했던 유명 인사들이 많아서다. 추투난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궈모루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상웨 중국 인민대학 교수 등이다.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사람들이지만 중국에서는 다르다. 졸업생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으로 항일 영웅 자오상즈 동북항일연군 제3군 군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김일성은 2년 가까이 이 학교에 다니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상웨를 만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상웨는 공산주의자로 이 학교에 부임한 것은 1929년 초였다. 상웨가 위원 중학교에 오게 된 것은 추투난이 소개하면서다. 두 사람은 중국 공산당 창건자 가운데 한 사람인 리다자오의 영향을 받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상웨는 제자인 김일성에 대해 “김성주(김일성의 본명)라는 조선인 학생이 나에게 준 인상이 가장 깊었다"라고 회상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서가에서 수백 권의 책을 김일성에게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그 가운데 레닌의 ‘제국주의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루쉰의 ‘아Q정전’, 조설근의 ‘홍루몽’ 등이 김일성의 관심을 끌었다. 김일성은 상웨로부터 마르크스-레닌 사상을 배웠다. 김일성은 그런 그를 “마르크스-레닌주의 계몽 스승(马列主义的启蒙老师)”이라고 말할 정도로 따랐다.

상웨는 위원 중학교에 오래 있지 못했다. 그는 1929년 6월 지린성 교육청이 문제 학생들을 제적하자 이에 맞서다가 학교에서 해임당했다. 김일성도 1929년 가을 공산청년회를 조직할 것을 의논하는 모임에 참석했는데, 이 사실이 지린성 일본 총영사관에 발각돼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 그래서 위원 중학교를 중퇴하게 됐다. 김일성과 상웨는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상웨가 김일성에게 준 영향은 컸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상웨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의 딸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대접하기도 했다.

위원 중학교는 1960년 평양의 창덕 학교와 자매결연을 했다. 창덕 학교는 김일성이 1923년~1925년에 다닌 학교다. 나이로는 11~13세 때다. 두 학교는 김일성이 다녔다는 인연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김일성이 창덕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외할아버지 강돈욱이 당시 교감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강돈욱은 이 학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쳤다. 김일성은 창덕 학교를 다니다 1925년 다시 중국으로 이동해 만주 무송 제1소학교→화성의숙→위원 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위원 중학교와 창덕 학교는 마치 중국 대외연락부와 북한 국제부처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위원 중학교는 2007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창덕 학교에 대표단을 보내 축하하기도 했다. 당시 한비 위원 중학교 교장은 학교에 있는 ‘재능이 밝으면 덕을 이룬다’라는 글귀를 그대로 새로운 간판에 새겨 창덕 학교에 선물했다.

위원 중학교가 주목을 받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8월 방문하면서다. 불과 3개월 전에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와 정상회담을 했기 때문에 그의 방중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정일은 그때 제일 먼저 위원 중학교를 찾았다. 아버지가 생각나서일까? 그는 위원 중학교를 시작으로 김일성의 과거 행적을 좇아 이동했다. 위원 중학교 다음으로 동북항일연군의 기념관이 있는 하얼빈과 김일성의 항일유적지가 있는 무단장 등을 방문했다. 후진타오와 정상회담은 지린성 창춘에서 했다. 그때 김정은이 동행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김정일이 2010년 8월 방중한 것은 김일성 유적지 순례를 통한 김정은의 후계 승계가 주요 목적이었다. 김일성의 항일 활동 유적지 순례는 김일성의 후광이 김정은에게 비추도록 해서 권위를 높여줄 수 있는 방책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김정일이 1순위로 정한 곳이 위원 중학교였다.

위원 중학교는 북·중 모두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왕야쥔이 그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왕야쥔이 지린성을 찾은 것은 조중친선의 해를 맞아 북한과 인접한 지린성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도인 창춘에서 징쥔하이 지린성 당서기와 후위팅 지린성 성장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기 전에 위원 중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주북한 중국대사가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인데, 아무튼 신의 한 수였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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