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매일 지옥훈련, 올림픽서 금메달로 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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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국 유도의 두 간판 안바울(앞)과 김원진은 세 번째 올림픽 도전 무대인 파리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비운의 승부사’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어낸다는 각오다. 김성룡 기자

한국 유도의 두 간판 안바울(앞)과 김원진은 세 번째 올림픽 도전 무대인 파리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어 ‘비운의 승부사’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어낸다는 각오다. 김성룡 기자

“전혀 긴장하지 않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경험했잖아요.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입니다.”

한국 유도의 간판 안바울(30·남자 66㎏급·남양주시청)은 7월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한 체급 아래인 남자 60㎏급에 출전하는 김원진(32·양평군청)도 진지한 자세로 세번째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8년 전인 2016년 리우올림픽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로 나란히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던 두 선수는 2021년 도쿄올림픽을 거쳐 7월 파리올림픽에 동반 출전한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두 사람의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는 안바울과 김원진을 최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안바울은 “첫 올림픽은 처음이라서 정신없이 지나갔고, 두 번째 올림픽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치르느라 뭔가 어수선했다. 파리올림픽은 세 번째 도전인데 이번엔 제대로 준비했다. 컨디션도 가장 좋다”고 밝혔다. 김원진은 “유도에선 (안)바울이도 나도 ‘할아버지뻘’인데, 매일 지옥훈련을 이겨내고 있다. 파리에서 금메달을 따내 ‘10년 지옥훈련’을 보상받겠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안바울과 김원진은 특별한 사이다. 두 사람은 같은 체급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라이벌이었다. 고교 시절 김원진이 60㎏급 최강자였는데, 안바울이 등장하면서 ‘양강 구도’가 됐다.

먼저 국가대표가 된 건 김원진이었다. 그는 고3 때인 2010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3년 뒤 안바울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런데 안바울은 60㎏급의 에이스였던 김원진의 파트너(2진)를 맡았다.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60㎏급 금)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출중한 기량을 갖춘 두 선수가 같은 체급에서 경쟁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당시 코치진은 안바울에게 66㎏급으로 체급을 변경할 것을 권유했다. 업어치기가 주특기인 안바울은 체격이 큰 선수들을 상대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안바울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2014년 66㎏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그 이후 안바울과 김원진은 각자의 체급에서 승승장구했다. 두 사람은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각각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올림픽 첫 번째 도전에 손쉽게 금메달을 거머쥘 것만 같았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하지만 올림픽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안바울은 은메달에 땄고, 김원진은 8강과 패자전에서 잇따라 무릎을 꿇었다.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선 안바울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원진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져 메달을 따지 못했다.

어느새 30대로 접어든 두 사람은 세 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다. 안바울의 목표는 무조건 ‘금메달’이다. 그는 “올림픽 메달을 2개나 따고도 ‘비운의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나 싫다”고 했다. 안바울은 “올림픽 메달을 따봤기 때문에 금메달이 더 욕심난다. 한국 유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은·동을 모두 따낸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디펜딩 챔피언 아베 히후미(27·일본)다. 아베는 ‘유도 아이돌’로 불리는 일본의 최고 스타다.

김원진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뛴다. 김원진의 아버지 고 김기형씨는 도쿄올림픽을 6개월 앞둔 202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김원진이 생애 첫 마스터스 대회 금메달을 차지하던 날이었다. 당시 그는 우승 직후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김원진이 결승을 앞두고 흔들릴까 봐 어머니는 그 사실을 숨겼다. 김원진은 뒤늦게 비보를 듣고 하염없이 울었다.

김원진은 “아버지 영전에 메달을 걸어드리기 전엔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도쿄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그는 곧바로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다. 2022년 경기 도중 왼쪽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이를 악물고 이듬해 복귀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남자 60㎏급 판도는 ‘춘추전국시대’다. 김원진은 “정신력으로 힘든 재활훈련을 이겨냈다”면서 “나는 메달을 따야 할 이유가 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쉽게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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