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젊은 예술, 정체되면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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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의 봄’으로 1300만 흥행을 거둔 김성수 감독이 지난 22일 제11회 춘천영화제에서 자신의 연출작 ‘비트’와 ‘아수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춘천영화제]

‘서울의 봄’으로 1300만 흥행을 거둔 김성수 감독이 지난 22일 제11회 춘천영화제에서 자신의 연출작 ‘비트’와 ‘아수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춘천영화제]

‘비트’가 개봉한 1997년에 태어났다는 MZ관객부터 중년 영화팬까지 질문이 골고루 쏟아졌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올초 1300만 흥행을 거둔 김성수(62) 감독이 지난 22일 강원도 메가박스 남춘천에서 열린 제11회 춘천 영화제를 찾았다. 주목할 만한 영화인을 초대하는 ‘클로즈업 섹션’에서 출세작인 청춘영화 ‘비트’와 범죄 누아르 ‘아수라’(2016)로 관객을 만났다.

“낡은 영화 졸작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관객에게 인사한 김 감독은 ‘아수라’를 두고 “내 감독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며 “‘아수라’가 없었다면 ‘서울의 봄’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충무로 방화시대를 경험한 몇 안 되는 현역 감독이다. 환갑이 넘어 천만 타이틀을 거머쥔 그를 영화제 현장에서 따로 인터뷰했다. 김 감독은 “영화는 젊은 사람들의 예술”이라 말하며 “인간으로도, 영화감독으로도 하락기인 저는 정체되면 절대 안 된다. 생존법은 딱 하나,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봄’은 관객들의 심박수 챌린지, 현대사 다시보기 운동까지 벌어졌다.
“신군부 세력이 작당해서 호의호식하는 이야기가 분노를 일으킬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짜증 나는 것에 돈 낼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데도 관객들이 호응해줬다. 염증과 비판의식을 가진 분들이 공명해준 게 아닐까. 천만은 전부 관객의 힘이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단편 데뷔작 ‘비명도시’(1993)부터 도시에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는 폭력성을 그렸다.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도시 뒷골목들을 사진에 담아 영화 콘티에 반영했다. 스크린에 생생한 현재성을 담아온 방식이 ‘아수라’ ‘서울의 봄’에서 한층 진화했다.

‘아수라’부터 연출 방식을 바꿨다고.
“현대영화는 진짜같은 날 것 느낌으로 가고 있다. ‘아수라’는 범죄 현장 르포 사진처럼 찍고 싶었다. 맹수가 서로 으르렁대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모든 장면에서 움직이며 말하도록 했다. 역동적인 움직임 만으로 관계와 감정, 적대감이 표현됐다. ‘서울의 봄’ 때도 같은 방식을 썼다.”
30년 넘게 현역으로 살아남은 비법은.
“생존하려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란 혼자서 안 된다. 이모개 촬영감독 등 실험적·도전적 동료들이 함께했다.”

김성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로 힘의 논리 속에 발버둥치다 허망하게 패배하는 남자들이 꼽힌다. ‘비트’에서 “나에겐 꿈이 없었다”고 독백했던 정우성은 ‘아수라’에선 비리 경찰 도경이 됐고, 강직한 군인 이태신을 연기한 ‘서울의 봄’에선 전두광(황정민) 패거리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

김 감독은 “나이를 먹을수록 남성 집단의 사리사욕과 패거리 문화를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면서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면 종결점이 더 근사해질 수 있는데 그렇게 정신 차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 가족의 비극을 그린 ‘오발탄’(1960)이 그에게 남긴 유산이다. 그는 영화 ‘오발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유현목 감독이 재직했던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김 감독은 “‘오발탄’이란 제목 자체가 목적 없이 허망하게 쏘아진 총탄을 뜻한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주인공의 ‘가자, 가자’ 하는 허망한 절규가 제 영화의 굉장히 큰 부분이 됐다”며 “욕망의 아귀 다툼이 끝나고 났을 때 깨닫는 허망함, 속절없음을 담은 영화가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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