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보부아르, 레마르크, 아렌트..연애도 드라마 같았던 셀럽들[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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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문학동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에 합의한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29년이다.

스물네 살의 사르트르는 스물한 살의 보부아르에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결혼을 요구했다. “당신에게 평생의 자유를 선물하겠소. 시몬,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이오.” 창작력을 북돋우고 천재성을 온전히 펼치려면 자유로운 성생활의 기회가 보장된 삶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혼외의 에로틱한 자유연애를 끝없이 추구했던 사르트르의 ‘영원한 아내’였던 보부아르도 자신의 동성 제자인 올가를 사랑했으며 올가의 약혼자인 자크로랑 보스트와 동침하기까지 했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부터 독일 히틀러의 나치가 1939년 2차대전을 일으키기까지 불안과 증오로 가득 찼던 혼란기에도 인간 사회에선 ‘사랑드라마’가 멈추지 않았다. 그 10년 동안 철학자나 배우, 예술가 등 유명 인사들은 엄청난 염문을 뿌리며 러브스토리를 창조해냈다. 독일 언론인 플로리안 일리스는 당시에 활동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피카소, 레마르크, 브레히트 등 세계적인 셀럽들의 사랑풍속도를 담은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을 펴냈다. 지은이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방대한 관련 자료를 수집해 그들 간에 얽히고설킨 사랑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 냈다.

자부심 강하고 자의식 센 독일 철학자들인 한나 아렌트와 하인리히 블뤼허는 나치 박해를 피해 베를린을 탈출해 망명한 파리에서 편지와 대화를 통해 신비로운 방식으로 가까워지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발전시킨다. 스승 마르틴 하이데거를 사랑했던 유대인 아렌트는 철학자인 학우 귄터 슈테른과 결혼한 몸이지만 망명지에서 블뤼허와 동거하며 육체적 열정과 정신적 열정을 쏟아부었다. 나중에 블뤼허와 재혼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며 세계적 철학자가 됐다.

피카소는 아내 올가를 제쳐 두고 새로운 뮤즈 마리테레즈 발테르, 스페인 금발 미인 도라 마르에 빠져 그 동력을 창작의 에너지로 삼았다. 시대를 초월하는 동판화 ‘미노타우로마키’에는 마리테레즈가, 그 유명한 ‘게르니카’에는 도라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반전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쓴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부인 유타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쫓아다녔다. 레마르크는 나중에 찰리 채플린의 연인이었던 폴레트 고다드와 결혼한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타고난 바람둥이 연애가였다. 어딜 가나 애인들이 줄을 섰다. 아내 헬레네 바이겔은 물론이고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 마르가레테 슈테핀, 루트 베를라우 등 애인들은 브레히트를 살뜰히 보살피고, 돌봐주거나 자기 침대에 들였다.

이 책에는 정치인, 작가, 무용수, 배우, 영화제작자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등장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과 연애는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임을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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