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내려놓고 '1인1책' 만든다…학생들 노는 법 바꾼 이 캠페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수도여자고등학교에서 서울시교육청 북웨이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수도여자고등학교에서 서울시교육청 북웨이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독서토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예술 작품의 정당성을 따지는 건 넌센스야.”
“하지만 예술의 가치가 동물의 권리나 관련 법령 위에 있지는 않지.”

지난 19일 서울 수도여고 1층 도서관, ‘고전과 윤리’ 수업에 참여한 2학년 학생들이 ‘동물을 예술 작품 재료로 삼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날 주제는 학생들이 지난달부터 읽었던 ‘동물, 뉴스를 씁니다(산지니)’라는 책에서 다뤄진 동물 복지 문제에서 파생됐다. 4명씩 3조로 나뉜 학생들은 조별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한지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철학교육 전공 박사)는 토론에 앞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까지 토론 주제와 관련된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했다. 학생들의 질문은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의 적정선은 어느 정도인가” “동물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나” 등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수도여고의 이 수업은 지난달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부터 추진 중인 ‘북웨이브(Book Wave)’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북웨이브는 시교육청이 그간 추진해 온 독서 활성화 사업 41개를 통합·확산하는 캠페인으로, 올해만 25억원여의 예산이 투입된다. 각 프로그램 대상은 학생, 학부모, 나아가 지역사회로까지 뻗어간다. 10분 독서 선언, 북 페스티벌, 심층 쟁점 독서토론, 학부모 독서동아리 공모전, 가족 책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엄마와 함께 밤 하늘 아래 무드등 켜고 독서를”

서울 불광초에서 7일 열린 독서캠프. 학교제공

서울 불광초에서 7일 열린 독서캠프. 학교제공

연령에 따라 독서 패턴이 바뀌는만큼, 초·중·고 급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제각각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에서는 친구와 함께 아침 또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독서를 하거나 이를 가정으로 확대한 캠프 등 이벤트가 주목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불광초가 지난 7~8일 개최한 ‘달빛별빛 독서캠프’다. 참석한 15가족 50여명은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학교가 준비한 50여권의 책을 나눠 읽으며 소감을 나눴다. 학교는 어둠 속에서 학생들이 독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 모양의 무드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 학교 김미경 교장은 “초등 시기엔 지식을 전달하는 책의 기능적 측면보다는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경험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며 “학부모 반응도 뜨거워서 추첨을 통해 절반 정도만 참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책 만들고 토론하며 ‘독서력’ 키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공원에서 열린 온가족 북웨이브 한마당에서 책 읽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경희궁공원에서 열린 온가족 북웨이브 한마당에서 책 읽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학교에서는 스스로 시, 소설, 수필을 쓰며 책을 만드는 학생도 나오고 있다. 올해 중학교 436곳의 학생 10만여명이 참여한 ‘1인1책 쓰기’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23년차 국어 교사인 윤수란 서울 연천중 교사는 학생들이 과제로 낸 시, 단편소설, 수필을 모은 책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는 “소설을 읽지 않고 소설을 쓸 수는 없는만큼, 매 학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읽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학생들이 독서에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또 “‘학생들의 가치있는 경험을 개성있는 표현으로 형상화 한다’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감동이나 즐거움을 준다’ 등의 중학교 교과서 성취기준에 따라 수업 과제로 학생들이 직접 글을 쓰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학업에 밀려 독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고교에서는 심층 토론 프로그램이 인기다. 올해만 102개교 206팀이 참여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이 사업을 위해 박사리더단을 꾸려 학교에서 필요한 인력을 매칭시키고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토론 수업을 석 달 째 듣고 있는 김영은(수도여고 2학년)양은 “수업에서 친구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평소 책을 읽을 때도 하나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취임 초기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북웨이브 캠페인이 서울 학생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책과 친숙해지고, 평생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의 문해력과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 향상에도 캠페인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