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만난 걸리버 상상해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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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소설가 김연수가 19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은 총 19개국 참가사가 모여 전시, 세미나 등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소설가 김연수가 19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은 총 19개국 참가사가 모여 전시, 세미나 등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걸리버 여행기』 유럽 판본 중에는 걸리버가 탄 네덜란드 상선이 지나는 바다를 ‘씨 오브 코리아’(Sea of Corea)라고 표기한 책도 있습니다. 일본 서쪽이자 제주도 남쪽의 이 바다는 『홍길동전』에서 이상 국가 율도국이 위치한 곳입니다. 자연스레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난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게 됐죠.”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기획으로 『걸리버 유람기』를 쓴 소설가 김연수(54)의 말이다. 단행본으로 새로 나온 이 유람기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 원작을 우리말로 처음 옮겨 1909년 ‘십전총서’라는 문고본 시리즈의 첫 책으로 펴낸 최남선을 잇는 작업이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최남선 『걸리버 유람기』의 가장 큰 특징은 ‘다시 쓰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소인국 수도를 ‘서울’로 옮겨 한국화했는가 하면, 변사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어체를 구사했다는 것. 걸리버의 여행지는 최남선 판본처럼 1·2부의 소인국·거인국 위주로 알려졌지만, 실은 3·4부까지 네 나라다. 그중 4부의 ‘후이늠’은 인간 대신 이성적인 말(馬)들이 사는 나라이자, 도둑질이나 전쟁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이번 도서전의 주제다. 후이늠에서 인간은 ‘야후’라는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원작을 통해 스위프트는 당대 영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작가는 “성직자이기도 했던 스위프트는 당시 현실에 크게 절망했다”며 “우리 시대의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우리가 이대로 가면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듯, 스위프트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이후 300년 동안 세상이 살아남는 데서 묘한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며 “『걸리버 여행기』나 『홍길동전』 같은 고전의 존재, 책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유람기에 대해 “최남선의 1·2부를 요즘 표기법으로 옮겼고, 최남선의 방식으로 오늘날 한국의 관점에서 3·4부를 썼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스위프트의 현실 인식과 달리 희망의 가능성을 담아냈다. 특히 홍길동의 등장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걸리버에게 율도국을 “언어와 감옥과 죽음이 없는 곳”으로 소개하고,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하는 ‘축지법’에 더해 시간을 이동하는 ‘축시법’도 알려준다. ‘언어가 없는 곳’을 이상 국가로 그린 데 대해 김 작가는 “오늘날 인공지능이 언어의 장벽을 없앨 수 있다면, 국가·민족·언어에 따른 차별도 없어지고 오해나 불신·전쟁도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은 서울 코엑스에서 26~ 30일 열리며, 주제 ‘후이늠’ 관련 전시 및 여러 행사와 출판사 부스가 마련된다. 주빈국 사우디아라비아, 한국과 수교 50주년인 오만, 65주년인 노르웨이 등 해외 작가들의 내한, 각국의 문화 행사도 열린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과거 도서전의 회계 문제를 지적하며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를 통한 출판계 지원을 중단했다. 올해 들어 과거의 수익금 환수를 결정했고, 출협은 이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행사 규모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라며 “400개 행사가 열리고 200명 작가가 참석해 독자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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