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공격 받으면 상호 지원…김정은·푸틴 군사동맹 손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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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악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두 사람은 양국 관계를 사실상 동맹 관계로 격상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AP=연합뉴스]

1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악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두 사람은 양국 관계를 사실상 동맹 관계로 격상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AP=연합뉴스]

합법적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불법적 핵 개발국인 북한이 군사 동맹을 선언하며 세계 안보 지형을 흔들었다.

19일 평양에서 회담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언론 발표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선언했다. 푸틴은 “오늘 서명한 조약은 무엇보다도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고, 김정은은 “두 나라 사이 관계가 동맹 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푸틴과 김정은은 이날 오후 6시쯤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정상회담 뒤 생중계로 진행된 공동 언론 발표에서 “이번 조약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격상됐다”고 했다.

푸틴은 “양국 간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적 관계에 관한 조약은 비약적 발전의 의미를 담은 문건”이라면서 “정치·경제·무역·문화 인도주의적인 분야와 안보 분야와 관련해 이정표를 세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조약에 따르면 어떤 나라에 침략이 있는 경우에 상호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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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원문은 곧바로 공개되지 않아 그가 언급한 ‘지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북한이 희망한 것은 1961년 7월 북한과 소련이 맺은 조·소 상호방위조약의 부활이었다. 해당 조약은 유사시 “지체 없이” “온갖 수단으로” 군사 원조를 제공하도록 하는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담고 있다. 이를 대체한 2000년 신조약은 “침략당할 위기가 발생할 경우, 또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리고 협의와 협력이 불가피할 경우”에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고만 했다.

러, 북에 전략무기 기술 넘길 가능성글로벌 안보 흔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한 러시아산 리무진 ‘아우루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한 러시아산 리무진 ‘아우루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EPA=연합뉴스]

푸틴의 발언으로 미뤄 사실상 자동 개입에 가까운 수준의 내용이 포함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상호 원조를 제공하는 기준이 조약상 명확히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기준’이 명시돼 있다는 것 자체가 조건 없이 군사적으로 참여하는 자동 개입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김정은은 언론 발표에서 ‘유사시 상호 지원’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의무 이행에 충실함에 있어서 그 어떤 사소한 해석상 차이에도 추호의 주저와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원했던 대로 조·소 동맹 수준의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부활한 것이라면 “사소한 해석상 차이”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협정문 전문을 봐야겠지만, 일방이 군사적인 위협을 받을 경우 지원을 하겠다는 언급이 있다”며 “북·러 관계가 군사동맹에 육박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격상됐다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은 군사 분야 협력 의지를 명확히 했다. 푸틴은 “한반도 긴장의 원인은 미국의 침략적 대결적 정책 때문이며, 북한은 자주권 수호를 위해 합당한 조치를 할 권리가 있다”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군사 기술 협조도 배제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는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사실상 옹호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이 원하는 정찰위성, 핵추진 잠수함 등 전략무기 개발을 위한 군사적 기술이전 가능성도 엄포를 놓은 셈이다.

또 이번 조약 체결의 목적이 북한의 포탄 지원을 정당화하려는 사전 작업인 것처럼 암시하는 발언도 있었다. 푸틴은 조약의 ‘무력 침공 시 상호 지원’ 부분을 설명한 뒤 곧이어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최근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고정밀 장거리 무기체계, (미국의) F-16 전폭기와 다른 첨단 무기, 러시아 영토 공격용 장비를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한·미·일 군사훈련 확대는 (세계) 평화를 약화시키고 지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미국 주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에게 “다음 회담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길 바란다”며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재답방을 제안했다.

김정은은 이번 조약을 “중대한 사변” “조로(북·러) 관계 발전의 분수령” “북·러 관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약”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또 “위대한 조로동맹” “불패의 동맹” 등으로 북·러 관계를 치켜세웠는데, 이 자체가 북·중 간 혈맹을 의식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제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보다 새롭게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더 중요한 상대라고 부각한 것일 수 있어서다. 이어 “세계의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강력한 러시아 연방이 맡고 있는 중요한 사명과 역할을 평가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모든 정책을 변함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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