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도 일일이 보고받았다…공소장에 담긴 '이재명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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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스타일의 경기 도정 운영과 대북 사업 주요 국면마다 게시한 트위터 등이 불법 대북송금 혐의 공모 정황으로 검찰 공소장에 담겼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서현욱)가 지난 12일 이 대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 대표가 경기도 대북 사업을 보고받고 불법 대북 송금까지 인지한 정황이 수차례 언급돼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스마트팜 비용 대납 명목으로 500만 달러, 이 대표 방북 비용 대납 명목으로 3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가 북측 인사에게 전달된 사실관계가 인정된 만큼 이 대표 재판의 최대 쟁점은 결국 관련 보고 및 지시 등 연루 정황 입증이다.

검찰은 우선 이 대표가 2018년 7월 경기지사 취임 직후 일상적 업무를 제외한 중요사항은 사소한 것까지도 일일이 보고받는 ‘이재명 스타일’ 체계를 확립한 데 주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인 지난 2018년 11월15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과 경기도 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스마트팜 첨단온실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인 지난 2018년 11월15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과 경기도 농업기술원을 방문해 스마트팜 첨단온실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경기도

공소장에 따르면 이 대표는 실·국장 전결 사항 중 일상적·반복적 업무를 제외한 일을 지사에게 사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 전 부지사의 방북 전후인 2018년 10월 1일, 22일 재차 누락 없이 지사에게 사전 보고를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 검찰은 특히 이 전 부지사와 ‘성남 라인’으로 꼽히는 정진상 전 정책실장, 숨진 전모 비서실장, 김용 전 대변인 등이 주축인 정무회의에서 대북사업 중요사항을 논의하고 이 대표의 지시 또는 승인 아래 대북사업이 진행됐다고 봤다.

이 대표 트위터와 보도자료, 기자회견 지시 등도 스마트팜 등 대북지원 사업을 보고받고 주도한 정황으로 제시했다. 이 전 부지사가 2018년 10월 2~3일 중국 선양에서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을 만나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사업을 포함한 6개 협력 사항을 합의하자, 경기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화영 부지사의 이번 방북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뜻에 따른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 또한 이 대표 지시였다. 이 대표는 같은 날 트위터에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남북교류협력사업부터 시작하겠다”는 글을 게시하는 등 6개 항 합의가 ‘이재명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도록 조치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8년 10월 25일 경기도청 브리핑에서 방북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조선아태위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 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 경기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8년 10월 25일 경기도청 브리핑에서 방북 성과를 발표하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조선아태위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 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 경기도

공소장엔 이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 방식으로 6개 합의 사항을 발표하려 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전 부지사가 같은 해 10월 4~6일 방북해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을 만나 500만 달러 규모의 스마트팜 지원 사업을 약속하고 돌아오자 직접 2018년 10월 7일 기자회견 방식으로 발표하려 예정했다가 당일 사생활 논란이 불거져 취소했다. 대신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청 브리핑실에서 ‘경기도, 북한과 6개항 교류협력 합의’ 기자회견을 하도록 지시하고, 회견 직후 본인 트위터에 직접 ‘평화가 경제입니다. 경기도는 남북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현안부터 시작하겠습니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해 홍보했다고 한다.

이 전 부지사가 대북 제재로 경기도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통한 스마트팜 사업 지원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같은 해 10월 20~23일 2차 방북한 뒤 김영철 조선아태위 위원장, 김성혜 실장 등으로부터 스마트팜 지원사업을 적극 추진해달라고 요청받자 500만 달러 지원을 재차 약속하고 귀국했다. 이 대표는 이틀 뒤 10월 25일 ‘경기도 8년 만에 재개된 남북교류협력사업 본격화’란 제목으로 “2018년 11월 열리는 제1회 국제대회에 북한 관계자가 방문해 도지사의 방북 일정을 논의할 것”이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트위터에 “한반도 평화와 경제번영을 이뤄나가는 길에 경기도가 함께 합니다”란 내용의 글을 작성해 홍보했다.

이후 이 대표는 11월 15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석한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과 송명철 부실장이 스마트팜 시설 견학을 원한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같은 날 오후 이들을 경기도 농업기술원 첨단 온실인 아쿠아포닉스 시설, 태양광 식물공장을 직접 안내했고, 리 부위원장은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2019년 1월17일 이화영(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송명철(가운데)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김성태(왼쪽 두 번째) 전 쌍방울그룹 회장, 안부수(왼쪽 첫 번째)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만찬장에서 양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독자

2019년 1월17일 이화영(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송명철(가운데)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김성태(왼쪽 두 번째) 전 쌍방울그룹 회장, 안부수(왼쪽 첫 번째)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만찬장에서 양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독자

결국 같은 해 12월 이 전 부지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만나 “이재명 도지사가 잘되면 쌍방울을 생각해주지 않겠느냐.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기금으로도 얼마든지 지원해줄 수 있다”며 대납을 요구해 수락받았다. 이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과 2019년 1월 17일 중국 선양에서 쌍방울이 500만 달러를 대납하는 대신 희토류 등 광물 개발사업권을 부여받는 내용을 북한과 합의한 후 이 대표에게 전화해 김 전 회장을 바꿔주자 “좋은 일 해줘서 감사합니다”고 하는 등 스마트팜 사업비용 대납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같은 해 7월 24일 자신의 방북 의전비용 200만 달러 중 70만 달러 대납이 이뤄진 필리핀 마닐라 제2회 국제대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김 전 회장과 통화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저 역시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지원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러한 정황과 보고 체계 등을 토대로 이 전 부지사의 북한 측 인사와 만남을 통한 남북교류협력사업 합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스마트팜·경기지사 방북 비용 대납 등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승인 아래 상호 공모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회장과의 두 차례 통화와 남북교류협력기금 증액(2017년 말 126억원→ 2018년 346억원)을 통한 쌍방울그룹 지원 시도도 불법 대북송금 혐의 사건의 공모자로 이 대표를 기소한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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