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처럼 단절된 사람들…차별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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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음악극 ‘섬:1933~2019’은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 두 수녀와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다. [사진 국립정동극장]

음악극 ‘섬:1933~2019’은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 두 수녀와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다. [사진 국립정동극장]

 “내 진짜 잘하고 있나?” “잘하고 있다.”

“그래도 안 되면?” “그러면 또 하면 되지.” (중략)

“언제까지?” “될 때까지.”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은 외할머니 백수선에게 묻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냐”고. 백수선은 몇 번이고 “또 하면 된다”며 손녀를 다독인다. 백수선은 과거 한센병을 앓았다. 소록도에 강제 이주돼 오랜 시간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1930년대 소록도를 버텨낸 할머니와 2019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손녀는 나란히 앉아 서로를 위로한다.

‘섬:1933~2019’(연출 박소영)은 1933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실존 인물.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간호한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슈퇴거(90)와 마가렛피사렉(1935~2023) 수녀다.

1966년 소록도에 파견된 두 사람은 자원봉사가 끝난 뒤에도 섬에 남았다. 갓 간호학교를 졸업한 20대부터, 환자들에게 ‘큰 할매’ ‘작은 할매’로 불린 70대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환자들과 보냈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이야기다. 극은 1960년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933년 소록도 갱생원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 백수선, 발달장애아를 키우며 살아가는 2019년 고지선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준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실존 인물을 조명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박소영 연출,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가 노동 운동가 전태일(‘태일’),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백인당 태영’)에 이어,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무대로 소환했다. 한 명의 인물에 집중한 ‘태일’ ‘백인당 태영’과 달리, ‘섬: 1933~2019’은 두 수녀의 숭고한 삶 외에 한센병 환자들과 발달장애아동 가족까지 고루 조명한다.

12명의 배우는 모두 일인다역을 소화한다. 1930년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가 2019년 특수학교 부지에 체육시설을 짓자고 주장하는 주민이 된다. 누구나 처지가 바뀔 수 있음을 나타내는 장치다. 발달장애 아동 김지원 역에는 배우를 배정하지 않았다. ‘지원’이라고 쓰인 노란색 야구 모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발달장애아를 특정한 모습으로 그려 또 다른 편견을 낳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연출진의 설명이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다음 달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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