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언제 내리나…한은 선택의 시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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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01면

미루는 미국 따르나, 먼저 내린 유럽 쫓나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인용한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정책 결정 원칙이다. 최적의 금리 인하 시기 결정과 관련, 복잡하고 미묘한 국내외 상황과 고민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읽혔다. 이 총재는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 동결과 함께 연내 한 차례 금리 인하를 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연준의 행보에 보조를 맞춰 온 한은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연준과의 동조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새로운 목소리가 만만찮게 나온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지가 미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서다. EU가 쏘아 올린 ‘선제 인하론’은 정치권으로 옮겨붙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3일 “고금리가 지속돼 우리 경제가 급속하게 침체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선제적 금리 인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5월까지 8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한 수출과 달리, 민간소비는 3월부터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는 등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민생을 대변하는 정치권이 먼저 나선 것은 예견된 수순일 수 있지만, 경제 전문가 사이에서도 “미국을 따르는 것은 과거 패러다임”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야 한다는 과거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선제적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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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U·캐나다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특히 한·미 금리 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면 1300원 후반대에 머물고 있는 달러당 원화 가치가 14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자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드는 한국은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물가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금리를 5%대까지 끌어 올렸지만, 우리는 3%대에 머물렀다”며 “충분히, 강하게 올리지 못했던 만큼 먼저 금리를 내릴 여력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국은 말은 아끼고 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 순방 중인 13일 화상연결을 통해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당국의 고심이 그만큼 깊다는 얘기다. 금리 인하 시기는 최대의 변수이자, 초미의 관심사다. 내리자니 환율·금리 불안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마냥 늦추면 경제 주체들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올바른 해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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