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북 무기 노리고…김정은, 좌러우중 포석 다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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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06면

푸틴 방북 초읽기북·러 속내는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정부가 나서서 방북을 공식 확인하였고 ‘예정된 일정’이라며 김빼기 전략을 구사했다. 푸틴은 지난 3월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 벨라루스 및 우즈베키스탄 방문에 이어 네 번째 방문국으로 북한을 선택했다. 모스크바가 평가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의 방북을 강력하게 요청한 데 대한 응답이다. 선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던 2000년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24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가가 됐고 러시아에게 1년 이상 미사일을 공급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다. 격세지감의 상황에서 푸틴은 왜 평양에 가며 김정은과는 어떤 주제를 논의할까? 이들의 묘한 만남이 한반도 및 동북아에 주는 파급 영향은 무엇일까? 정상 간 밀착으로 인한 세부 거래 내역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군사적 거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한의 재래식 무기가 인기 상품이 되었다. 지난 70년간 초지일관 재래식 무기 생산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전략적 가치가 급등해 북한 외교의 만조기(滿潮期)가 형성됐다. 그간 고난의 핵 개발로 군사동맹 관계인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도 관계가 여의치 못했던 북한은 동북아 국제 정치에서 이단아였다. 국내 정치가 생물인 것처럼 국제 정치도 정지된 것이 없다. 러시아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자세를 바꿨다. 북한으로서는 중·러를 등에 업고 한·미·일에 대응하는 신냉전 구도의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북·러 정상 간 연결 단초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하되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다. 푸틴이 베이징 다음으로 평양을 찾는 핵심 이유다.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제 미사일과 포탄은 러시아군에게 필수 무기가 되었다. 군사력 확충을 위한 생존형 밀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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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치적 거래다. 정상회담에서는 1961년 옛 소련과 북한이 체결한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의 정신을 계승하는 협정이 논의될 것이다. 당시 조약에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돼 있었지만 1990년 소련이 한·소 수교 후 조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1996년 폐기됐다. 북한은 1961년 북·중 우호조약만으로는 한·미·일에 대응하기가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러시아와 군사 자동 개입 조항을 포함한 신(新)우호조약 체결로 좌(左) 러시아, 우(右) 중국 외교 틀을 구축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후 러시아의 무기 특수가 중단될 경우를 대비하는 장기적인 동맹 포석이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 패널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범죄자를 추적하는 감시카메라를 끄고 북한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러시아와의 신우호조약 체결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러시아의 뒷배를 믿고 재래식 무기를 통한 도발은 물론이고 핵무기를 거론하는 푸틴의 발언에 자극받아 핵 위협이 고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는 우주항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거래다. 북한이 지난달 27일 발사한 군사정찰위성 2호기는 발사 2분 만에 폭발했다. 김정은은 추가 도발에 나설 것을 예고하였지만, 관건은 기술이다. 북한은 6개월 만에 기존의 백두산엔진에서 연료·산화제를 바꾼 새 대형엔진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김정은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대형 엔진에 관심을 보이더니 무리한 엔진 교체를 시도한 것이다. 위협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러시아의 대형 로켓을 무조건 따라 하다가 사달이 났다. 러시아 기술진을 맹신했는지 애초에 무모한 시도였는지는 미스터리다. 북한은 러시아에서 단순 기술 이전만 받을지 혹은 완제품 엔진을 통으로 받을지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할 부분이다. 이외에 핵추진 잠수함, 전투기 등도 북한의 관심 품목이다. 양국 간 군사협력의 제도화가 최종 목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거래다. 북한은 중국과 식량과 물자 지원 등의 경제적 실리를 얻으면서 베이징의 정치적 노선을 추종하는 종법적(宗法的) 관계였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북·중 국경이 닫힌 후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일하는 10만여 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의 귀국과 재입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은을 만났으나 흐름은 바뀌지 않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대체할 경제적 후견국으로 러시아 카드를 끄집어냈다. 관광, 경공업, 농업 투자 및 북한 근로자의 러시아 파송 등이 핵심 의제다.

북·러의 결탁과 밀착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차가운 북서풍을 강화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푸틴은 6월 5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은 한국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한·러 관계를 회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든 말든 우리의 이웃인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며 북·러 밀착 입장에 못을 박았다. 북·러의 밀착은 우리 안보 불안에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차적으로 북·러의 결탁이 북·중·러로 확대되지 않도록 한·중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러시아 편향으로 심기가 불편한 중국과 2+2 외교안보 대화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 북·러의 군사협력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한·러 전략대화도 모색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한반도 체스판에 대응하는 민첩한 동작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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