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성 벗게 할 성찰적 학습능력…한국 가장 흥미로운 모델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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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26면

하버마스가 보는 동아시아 문명의 미래

하버마스를 만나러 독일을 가는 나에게 그의 건강을 묻는 주위의 동료들이 많았다. 나도 6년간 그를 만나지 못했으니 그의 건강이 어떤지 궁금했다. 2018년 9월 그를 예방했을 때 그는 1년 뒤 90세를 기념하는 학술행사 준비와 또 『하나의 철학사』 출간의 마지막 손질로 바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매년 뮌헨 근처 그의 자택을 예방하는 기쁨을 더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5월 19일 6년 만에 그를 만나보니 95세의 나이에 여전히 건강하게 보였다. 나는 무엇보다 2019년 출간된 『또 하나의 철학사』 가운데 1권 3장에 수록된 그리스 문명과 유교·불교 전통에 대한 계보학적 비교연구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 이유는 그의 연구가 1996년 한국 방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방한 때 영향받아 유·불교 연구

세계적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난달 19일 독일 스타른베르크 자택에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대화할 당시 모습. 올해 95세인 그는 건강했다. [사진 한상진]

세계적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난달 19일 독일 스타른베르크 자택에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대화할 당시 모습. 올해 95세인 그는 건강했다. [사진 한상진]

세 가지 에피소드가 우선 떠오른다. 첫째 하버마스는 4월 29일 서울 도착하고 다음 날 곧장 성균관대를 찾았다. 5월 10일에는 하루 종일 서울대에서 비판이론 워크숍을 가졌다. 이를 통해 그는 유교적 공론정치의 이상이 한국 정치에 면밀히 이어져 왔고 이것이 민본주의와 결합하여 체제 안의 개혁과 시민(선비)운동으로 개화되었다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둘째는 5월 5일 해인사에서 가진 종림 스님과의 대화다. 종림 스님은 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을 지휘하던 개명된 승려였다. 하버마스는 일본에 취약한 윤리적 보편주의가 한국 불교 전통에 살아 있는지를 물었고 종림 스님은 참선 수행과 공(空)의 세계, 이를 통한 중도의 길은 철저하게 주술과 무속을 떠난 초월적 신앙임을 설명했다. 하버마스는 당시 황홀한 느낌 속에 불교적 초월의 세계를 여행했다고 뒤에 여러 번 회고했다.

셋째는 출국 전날 5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연 합동기자회견이다. 하버마스의 핵심 메시지는 한국은 더는 자신의 발전모델을 해외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유교와 불교의 문화자산을 현대화하여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발전, 첨단 산업에 녹여내는 창의적인 발전의 길을 제안했고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걷지 못한 독자적 길을 걸을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경험을 반영하듯 그는 독일 귀국 후 8월에 보낸 편지에서 한국 방문으로 자신의 눈이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유교의 공동체적 소통 윤리와 불교의 심오한 도덕적 지향을 연구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종교연구가 2019년에 결실을 맺었으니 2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 하버마스는 2006년 내가 인터뷰할 때 종교연구를 위해 한국과 중국을 다시 오고 싶어 했다. 구체적인 일정과 연구주제도 짰다. 그러나 그의 건강 문제로 이를 실행하지는 못했다.

2019년 출간된 『또 하나의 철학사』 영문판.

2019년 출간된 『또 하나의 철학사』 영문판.

이런 이유 등으로 하버마스는 자신의 유교·불교 연구가 초보자의 학습에 불과한 것으로 자세를 낮추었지만, 2019년 저술은 야심적이다. 오랫동안 서구사상을 지배했던 형이상학의 시대를 지나면서 기독교가 어떻게 자신의 맹목성과 근본주의를 벗어나 과학과 기술, 세속적 합리주의, 실용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는가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그는 탈형이상학적 사고라고 불렀고 성찰적 학습능력의 증진으로 보았다.

이런 연구결과가 나오자 서구에서는 철학과 종교 분야에서 수많은 토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서구에 결여된 유교와 불교에 관한 토론에 관심이 컸다. 특히 두 가지 질문을 많이 생각했다. 첫째 하버마스는 이 저술로 유럽중심주의 사조를 극복했는가? 둘째 그는 1981년부터 일본을 다섯 차례 방문했고 한국은 1996년, 중국은 2001년 각각 한 차례 방문했는데, 길게 보면 45년 짧게 보아도 30년에 걸친 동서양 대화의 결론은 과연 무엇인가?

첫 번째의 질문, 유럽중심주의 사조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서구는 선진사회요 비서구는 후진사회라는 차별에 근거하여 후자는 전자를 따라야 한다는 규범적 평가를 하는 경우다. 대표적 보기는 근대화 이론이다. 그런데 근대화에 성공한 북반부와는 달리 남미·아프리카·중동·서남아시아 등 남반부에서는 서구적 근대의 확산은 곧 식민주의요 제국주의라는 인식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눈으로 보자면 서구적 근대 또는 보편주의는 억압된 타자의 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외면하고 무시하는 지배의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의 역설이 나온다. 그는 분명 과학과 기술, 도구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문명의 자기파괴적 결과를 날카롭게 인식하고 경고했지만, 근대의 계몽사상이 소진했다기보다는 미완의 상태에 있다고 보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주창하고 나섰다. 예컨대 베버가 갈파한 도구적 이성의 세계 지배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탈출하려면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 프로젝트는 분명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근대의 연속이자 보편성의 옹호로 나타나기 때문에 남반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유럽중심주의의 덫에 걸려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비판에 단호하게 대응했다. 유럽중심주의는 동서양 문화의 단순한 비교나 서구에 결여된 것을 예컨대 중국이나 인도에서 찾으려는 값싼 아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온갖 종류의 상대주의도 길이 아니다. 그는 남반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혹평했지만, 동아시아 문화에서 발견되는 상보적 대화 윤리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자신의 해법을 변호했다. 우리가 각자에게 익숙한 종교를 배타적으로 추종한다면 충돌의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 발전된 인간의 권리와 품격을 서로 경청하고 수용하면서 또한 자신도 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의 세계를 발견한다면 그 힘으로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소통 정의에 대한 보편주의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내년 봄 서울대 하버마스 학술대회 개최

지난달 19일 위르겐 하버마스(오른쪽)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위르겐 하버마스(오른쪽)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하버마스가 대변하는 소통 정의는 세 가지 절차적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모든 시민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관련된 의제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공평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를 갖는다. 둘째 상대의 견해를 나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상보성의 원칙을 지킨다. 셋째 이렇게 형성된 합의에 기초해서 추가 합의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비록 합의가 한시적이고 불완전하더라도 이에 기초해서 우리는 강제 없이 차근차근 소통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그가 발전시킨 의사소통의 합리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깔끔하게 대변하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존 롤스의 정의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원칙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분배 정의의 기준을 마련하려면 불가피하게 전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하버마스의 입장은 자유로운 공론장의 세계화를 통하여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로 요약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하버마스는 기축문명의 수준에서 성찰적 학습능력이 동서양의 세계종교에 동등한 무게로 내장되어 있다고 밝혔는데, 이 주장의 현실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논쟁을 요구하는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서양의 경우 성찰적 학습능력은 근대 계몽주의의 흐름으로 만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몽사상은 이제 거의 소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비관적 전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축문명 수준에서 확인된 유교와 불교의 윤리적 도덕적 보편주의의 잠재력은 장차 어떤 형태로 동아시아에서 꽃필 것인가?

하버마스의 혜안은 결국 서구와 만나는 유교적 소통 합리성의 동아시아적 발전경로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의하면, 한국이 가장 흥미로운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역동적인 시민사회, 평화적 정권교체, 활발한 공론 문화, 자유분방한 세대의 등장, 한류의 세계적 확산 등에서 보듯이, 한국이 수준 높은 성찰적 학습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2025년 봄에는 하버마스의 유교·불교 연구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유럽중심주의 문제를 포함하여 동아시아 미래를 탐색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서울대에서 열 계획이다. 하버마스는 참석은 어렵지만 이를 적극 환영했으며 논문을 보내주면 읽고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 의욕과 관심은 여전히 왕성하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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