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감독 앞에서 두산 상대로…김경문 감독의 특별한 900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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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65) 한화 이글스 감독과 이승엽(47) 두산 베어스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전승 금메달 신화의 주역이다. 김 감독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선수단을 이끌었고, 이 감독이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터트렸다. 예선 7경기 내내 부진했던 이승엽을 끝까지 4번 타자로 밀어 붙인 김 감독의 뚝심과 믿음이 최고의 결실로 이어졌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통산 900승을 기록한 후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통산 900승을 기록한 후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그 후 16년 가까이 흐른 지난 11일, 베이징의 두 영웅은 서울 잠실구장 그라운드에서 KBO리그 감독으로 마주섰다. 지난 3일 한화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은 이날 6년 여 만에 다시 잠실을 찾아 두산과의 첫 3연전을 시작했다.

이승엽 감독은 김 감독이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한달음에 달려갔다. 김경문 감독도 한참 후배인 이 감독을 발견하고는 정중하게 고개부터 숙였다. 이 감독은 "김 감독님께는 늘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언제가 됐든 현역 사령탑으로 돌아오실 거라고 믿어왔다. 감독님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환영 인사를 전했다.

두산은 김 감독에게 의미가 깊은 구단이다. 선수 김경문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두산의 전신 OB에서 포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통산 10시즌 중 9시즌을 두산 소속으로 뛰었다. 감독 김경문도 2004년부터 두산 지휘봉을 잡고 프로 사령탑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11년 6월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까지 7시즌 반 동안 정규시즌 960경기를 지휘하고 512승을 쌓아 올렸다. 김 감독이 기록한 통산 승수의 57%가 두산 시절 나왔다. 김 감독은 "두산은 내게 잊지 못할 팀"이라며 "여전히 두산 구단과 팬들께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승리해 통산 900승을 채운 뒤 한화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승리해 통산 900승을 채운 뒤 한화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화 이글스

이날 한화가 6-1로 승리하면서 김경문 감독은 프로 감독 통산 900승 고지를 밟았다. 김응용(1554승)·김성근(1388승)·김인식(978승)·김재박(936승)·강병철(914승) 감독에 이은 역대 여섯 번 위업이다. 통산 성적은 1707경기 900승 31무 776패(승률 0.537). 두산에서 512승, NC에서 384승, 한화에서 4승을 해냈다.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안에 KBO리그 감독 통산 승수 4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15승을 추가하면 강병철 감독, 37승 이상을 올리면 김재박 감독을 각각 추월한다. 한화와 3년 계약을 한 터라 재임 기간 안에 김응용·김성근 감독에 이어 역대 세 번째 통산 1000승 감독이 될 가능성도 크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이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오른쪽)이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김 감독은 "내 900승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900승을 달성해서 기쁜 이유는 오직 "선수들이 부담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나도 내 900승을 신경 쓰지 않는데, 선수들이 괜히 의식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빨리 1승을 채우길 바랐다"며 "지난 주말 (3연전을 1무 2패로 마친 뒤) 1승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그래서 더 "나보다는 우리 선수들이 더 칭찬 받아야 하고, 더 주목 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감독 생활을 오래 하면 승리는 자연스럽게 쌓인다. 내 개인 기록은 지금 팀에 큰 의미가 없다. 한화가 5강에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베테랑 선수들이 솔선수범해서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치진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승리의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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